"10년 의무 복무로 지역의사 양성"…지역 의대·시민단체 환영 속 지속 가능성 과제로 부상
지역 의료 붕괴 우려와 전국적인 의사 인력 편중 문제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국회가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지역의사법을 처리하자 지역 의대와 시민단체는 환영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제도의 지속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물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법은 지역·필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선발된 의과대학생이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고, 별도로 기존 전문의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특정 지역에서 5∼10년간 종사하는 계약형 지역의사 제도도 포함했다.

이날 전국 곳곳의 지역 의대와 시민단체는 법 제정으로 지역 사회에서 활동할 의사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의과대학 졸업생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현실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울산대학교 관계자는 "지역의사제가 시행되면 지역 의료 인력 확보가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의사 채용에 있어 지원율이 높아질 것이고 의사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의무 근무 기간이 채용 후가 아니라 의사 면허를 딴 후 10년이라서 실제 병원에 머무는 기간은 이보다 짧을 수 있는 만큼 이후에 의사들 움직임을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공공의료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은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책 설계의 정교함을 주문했다. 최병용 단양군보건의료원 원장은 "열악한 지역 의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10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지역에서 보내고 난 뒤에도 서울로 대거 빠져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승연 전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으로, 현재 강원도 영월의료원에서 의과전문의로 근무 중인 그는 "수가 조정 등을 통해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강제력을 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가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 지역·필수 의사를 대우하겠다는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하며, 이번 법안 통과는 의대생들이 지역에서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준 긍정적 조치"라고 했다.
지역 시민단체들도 법 제정의 의미를 부각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 우리복지시민연합의 은재식 사무처장은 "지역 공공의료가 거의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사법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이고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공공병원 인력난과 필수 진료과 공백 상황에서, 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정책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정주여건 개선과 합당한 보상 체계, 필수 의료 분야에 맞는 세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거세다. 조승연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힘겹게 도입한 공공임상교수제가 현장에서 유명무실한 상황으로 정책 효율성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고 정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역의사가 '싼 인력'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적당한 보상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단순한 의무 복무만으로는 지역 의료 인력의 장기 정착을 보장하기 어렵고, 처우와 보상 수준이 제도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취지다.
필수 진료과 배치 문제도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처음부터 제도의 취지에 맞게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외과, 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을 지원하는 경우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수의료 구인난 해소라는 목표에 맞게 선발과 배치 기준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수도 구조적 보완을 요구했다. 그는 "지역에 근무할 의무 복무 기간만 정한다고 해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병원 시스템 강화와 합당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지방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의료계는 제도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정주환경 개선과 법·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 회장은 "정부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의사가 정주하도록 개선하고 의료사고로부터 의사를 보호하는 특례법을 제정하는 등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 강원본부도 지역 의료와 지역 산업을 함께 보는 접근을 주문했다. 강원본부는 "지역 산업도 함께 활성화하고 의사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지역 완결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인력 유입과 병원 시스템 강화, 지역 경제 활성화가 맞물려 돌아가야 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의사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후속 논의에 따라 제도 운용 방식과 재정 지원 규모, 필수과 배치 기준 등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국회와 정부가 향후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지역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할지에 따라 지역의사제의 실질적 성과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지역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추가 입법과 예산 확충 문제를 놓고 다음 회기에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