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니콘노린다…크래프톤·네이버, 1조펀드로 기술투자 확대
아시아 기술기업에 대한 한국 빅테크·금융 연합의 대형 성장 자본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크래프톤이 네이버, 미래에셋그룹과 손잡고 최대 1조원 규모의 신규 아시아 성장 펀드를 조성한다. 인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이미 존재감을 키운 크래프톤이 플랫폼·콘텐츠·인공지능 역량을 가진 네이버, 글로벌 자본 운용 네트워크를 갖춘 미래에셋과 결합하면서, 인도와 아시아 전역 기술기업 투자 지형이 재편될 분기점으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게임을 넘어 IT·헬스케어·소비재 등 기술 융합 산업 전반을 겨냥한 대형 성장 펀드가 아시아 유니콘 생태계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주목된다.
크래프톤은 19일 네이버, 미래에셋그룹과 함께 최대 1조원 규모의 아시아 펀드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펀드 명칭은 크래프톤-네이버-미래에셋 유니콘 그로쓰 펀드로, 한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주요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대형 성장 펀드다. 내년 1월 설립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크래프톤이 초기 투자금 2000억원을 출자한다. 세 기업과 외부 투자자의 자금을 합쳐 5000억원 이상 규모로 운용을 시작하고, 이후 추가 출자와 외부 자금 유치를 통해 최대 1조원까지 확대하는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유니콘 그로쓰 펀드는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조성했던 아시아 그로쓰 펀드의 후속 성격이다. 전 펀드는 인도 1위 푸드 딜리버리·퀵커머스 플랫폼 조마토, 동남아시아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그랩 등 유니콘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남겼다. 기술 기반 플랫폼의 성장 궤적을 조기에 포착해 후속 라운드까지 동행하는 성장 자본 모델을 통해 IT 서비스, 핀테크, 모빌리티 등에서 굵직한 회수를 경험한 셈이다. 이번에 크래프톤이 합류하면서 기존 플랫폼·금융 중심에서 콘텐츠·게임·디지털 엔터테인먼트까지 포트폴리오가 넓어지는 구조로 재편되는 점이 눈에 띈다.
이번 펀드는 인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누적 2억달러 이상을 집행해 온 크래프톤의 현지 경험을 전면에 내세운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의 흥행을 기반으로 인도 게이머·크리에이터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확보해 왔으며, 현지 스타트업 투자와 퍼블리싱 네트워크도 키워 왔다. 이런 데이터와 시장 이해도를 활용해 단순 게임 회사가 아닌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투자자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술 분야별 역할 분담도 뚜렷하다. 네이버는 플랫폼과 콘텐츠, 인공지능 역량을 전면에 내세운다. 검색·커머스·웹툰·클라우드로 축적한 데이터·AI 기술을 바탕으로 인도와 아시아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콘텐츠·플랫폼·생성형 AI 기반 스타트업을 선제 발굴하겠다는 전략이다. 미래에셋은 인도 전역에 깔린 금융 네트워크와 글로벌 자본 운용 노하우를 활용해 딜 소싱과 구조 설계를 맡고, 리스크 분산과 후속 투자 연계로 펀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둘 전망이다.
특히 이번 펀드는 IT와 실물 산업의 융합 분야를 중점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손현일 크래프톤 인도법인 대표는 소비재, 스포츠, 미디어,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투자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단순 콘텐츠 제작을 넘어 데이터 기반 소비 분석, 스포츠·미디어 IP와의 시너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등으로 확장되는 글로벌 흐름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팬덤 데이터와 스트리밍 기술, 웨어러블 센서가 결합된 팬 참여형 서비스나, 게임화된 헬스케어 플랫폼 같은 분야가 잠재 투자 영역으로 거론된다.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는 이미 인도와 동남아를 무대로 한 성장 자본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미국과 중동계 자본이 이 지역의 핀테크, 이커머스, 물류, 헬스테크 유니콘을 선점해 왔고, 중국 자본이 위축된 공백을 두고 각국 자본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빅테크와 금융 그룹이 함께 조성하는 대형 성장 펀드는 K-콘텐츠, K-게임, K-핀테크 등과 연계된 전략적 자본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와 정책 환경도 변수다. 인도는 최근 데이터 현지화, 외국인 투자 규제, 디지털 경쟁법 논의 등 IT·플랫폼 기업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추세다. 동시에 디지털 공공 인프라와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자본과 플랫폼 기업이 인도 내에서 장기적인 신뢰를 쌓으려면, 현지 정부 정책 방향과 데이터·AI 규제에 정교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헬스케어, 핀테크 등 민감 데이터가 오가는 영역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투자와 사업 확장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
미래에셋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계열사별로 보유한 자산운용, 증권, 보험, 대체투자 역량을 묶어 성장 단계별 맞춤형 자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성장 구간에는 벤처·그로쓰 투자가, 상장 전후에는 프리IPO·공모·채권 등 다양한 금융 수단이 연계될 여지가 있다. 크래프톤과 네이버 입장에서는 자사 서비스와 기술을 포트폴리오 기업에 적용하면서도, 금융 파트너와 함께 회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는 셈이다.
손현일 크래프톤 인도법인 대표는 각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들과의 협력이 의미 있는 시너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펀드 참여가 게임을 넘어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인도에서 발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와 국민에게 신뢰받는 브랜드를 지향하겠다는 언급은, 단기 회수보다는 장기 파트너십과 책임 있는 투자자로서의 입지를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최인혁 네이버 테크비즈니스 대표는 인도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해 온 크래프톤과의 전략적 협업이 뜻깊다고 강조했다. 네이버가 가진 플랫폼·콘텐츠·AI 역량을 앞세워 인도 혁신 기업 발굴과 기술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업계에서는 크래프톤의 게임·콘텐츠 IP, 네이버의 AI·클라우드·웹툰, 미래에셋의 자본 운용이 결합할 경우, 단순 재무투자를 넘어 전략적 제휴와 공동 사업으로 이어지는 복합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 성장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자본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 IT·금융 연합이 내놓은 유니콘 그로쓰 펀드가 얼마나 빠르게 유망 기술기업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디지털 헬스케어와 AI·콘텐츠 융합 영역에서 실질적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산업계는 이번 펀드가 인도와 아시아 기술 생태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