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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이 판세 가렸다”…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대통령실·정부 조직 한계 드러나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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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거세지는 가운데, 부산시가 내놓은 백서가 대통령실과 정부 조직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재외공관의 판세 경고가 상부에서 왜곡되거나 반영되지 않았고, 한류 콘텐츠에 치우친 홍보 전략이 최종 표 대결에서 리야드에 119대 29라는 참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부산시는 28일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활동 백서를 통해 2019년 국가사업 지정 이후 5년간 1천217억원을 투입하고도 유치에 실패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백서는 지나친 낙관론과 비효율적인 유치 조직, 회원국 의사결정권자에 대한 접근 부족을 핵심 원인으로 제시했다.

우선 유치 추진 구조부터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당시 국무총리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유치위원회와 유치지원단, 대통령실 소속 미래전략기획관실이 각각 역할을 맡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 관계 부처가 동원됐다. 그러나 백서는 이러한 분산 구조 때문에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추진에 어려움이 컸다고 평가했다.

 

특히 외교부와 유치지원단 등 일선 기관이 회원국 동향을 파악해 올리면, 이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야 할 대통령실과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백서는 대통령실과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판세 분석과 교섭 전략 수립 과정에 혼선이 반복됐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내부 분위기도 실패 요인으로 꼽혔다. 백서에 따르면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유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과도하게 확산하면서 현실적인 전망을 보고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됐다. 재외공관이 현지 사정에 근거해 보낸 냉정한 판세 분석은 상부 보고 단계에서 묵살되거나 왜곡됐고, 정책 판단에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고 적시했다.

 

특사 활용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 명의 특사 66명이 여러 차례 반복 파견됐지만, 회원국들 사이에서 피로감과 역효과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백서는 일부 특사가 최빈국 등 상대국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언행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으며, 실적 경쟁에 매몰돼 자신이 담당하는 국가의 지지 의사를 과도하게 낙관 평가한 정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유치전의 핵심 무대였던 경쟁 프레젠테이션 전략에도 허점이 컸다는 진단이다. 5차례에 걸친 국제박람회기구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부산 측 메시지는 회원국들을 설득할 만큼 분명하지 않았고, 인기 한류 콘텐츠와 유명 인사 등장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비판이 백서에 담겼다. 부산 개최의 필요성과 국제사회에 제공할 공공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보다, 눈길을 끄는 쇼케이스에 쏠렸다는 평가다.

 

시기와 외부 환경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백서는 경쟁국 대비 뒤늦게 유치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이미 형성된 지지세를 뒤집기 어려운 구조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고금리·고유가 상황에서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주요 채권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외교력이 회원국 표심에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홍보 전략의 방향성도 문제로 꼽혔다. 우리 정부는 한류를 활용한 대규모 문화 행사를 통해 회원국 대중을 상대로 집중 홍보를 펼쳤다. 그러나 정작 표를 행사하는 회원국 의사결정권자에게 접근하는 통로와 수단은 부족했고, 자금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제한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백서는 향후 세계박람회나 국제 행사 유치에 나설 때는 분산된 조직 대신 일원화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판세 분석과 교섭 전략, 현지 홍보까지 단일 조직에서 종합적이고 일관되게 조율해야 유사한 실패를 막을 수 있다는 제언이다.

 

또 회원국 여론 형성을 위해서는 각국 상황에 맞는 현지 홍보 전략을 촘촘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역시 회원국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춰 메시지와 형식을 설계하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세계박람회 유치가 국가사업으로 승인된 이상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 장치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백서는 특별법 제정 검토와 함께 글로벌 컨설팅사·홍보 대행사 활용, 국내외 전문가 풀 네트워크를 구축·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산시는 백서 분석 내용을 토대로 향후 국제박람회 등 대형 국제행사 유치 전략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국회도 제도 개선 논의를 이어가며, 차기 유치전에서는 컨트롤타워 정비와 전략 보완에 나설 계획이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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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대통령실#2030부산세계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