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AI 1위 정조준”…정부, 2030년 AI 패권 전략 드라이브
인공지능 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2030년 피지컬AI 분야 세계 1위를 공식 목표로 내걸고 AI 패권 전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AI 거품론과 별개로, 산업·사회 전반의 AI 전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제조, 국방, 보안, 데이터 인프라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행동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AI 규범·기술 경쟁에 본격 대응하기 위한 한국판 AI 국가 전략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근 부위원장은 15일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AI전략위 출범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AI행동계획안을 발표했다. 국가AI전략위는 지난 9월 8일 출범한 이후 민간 전문가 분과위원회와 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98개 과제를 도출했다. 이번 행동계획안은 국정과제 외에 새롭게 발굴한 정책과제를 포함한 것으로, 특히 보안과 인프라, 규제 혁신, 지역 전략 등 AI 확산에 필요한 기반을 총망라한 것이 특징이다.

임 부위원장은 최근 AI 투자 과열 논란과 관련해 거품 존재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술 패러다임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AI 경쟁이 국가 패권과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만큼 각국이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며, 경제·투자 차원의 조정 국면이 있더라도 AI 전환의 대세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행동계획안의 핵심 축 중 하나는 보안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국가AI전략위는 미국과 유럽연합처럼 민간 화이트해커를 활용해 국가 정보기술 시스템의 취약점을 상시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사고 발생 후 복구에 초점을 맞췄던 구조에서, 공격 발생 이전 단계부터 취약성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사전 예방형 보안으로 틀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초기에는 일부 시범 사업에 한해 도입한 뒤, 제도화 과정을 거쳐 공공과 민간 주요 플랫폼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 등으로 공공 IT 인프라 리스크가 부각된 점도 행동계획에 반영됐다. 정부는 민간 클라우드와 기술 역량을 적극 활용해 공공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이고 복원력 있는 구조로 재설계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동시에 이를 운영·관리할 통합적이면서도 전문성이 높은 거버넌스를 새로 짜, 단일 장애가 국가 전체 디지털 인프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AI를 축으로 한 산업 구조 재편 목표도 명확히 제시했다.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전략 속에서 2030년 제조업 세계 1위 달성을 내걸고, 강점 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전환을 가속한다는 방침이다. 생산 공정 최적화, 설비 예지보전, 공급망 관리 자동화 등 제조 현장에 AI를 깊게 심어, 설계부터 양산까지 전 주기에 걸쳐 AI가 개입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그림이다. 동시에 AI 설계, 모델 개발, 학습, 배포,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국내 기술로 구현할 수 있도록 AI 전주기 역량 확보를 국가 목표로 삼았다.
국방 분야에서도 AI 전환이 본격화된다. 정부는 국방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국방 AX를 추진해 장병과 AI 시스템이 협업하는 구조를 그린다. 전장 정보 분석, 작전 계획 시뮬레이션, 무인·자율 무기체계 운용 등에서 AI가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국방강국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이를 위해 대규모 군사 데이터 수집과 정제, 군 전용 클라우드 인프라, 사이버 방어 역량 강화가 함께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AI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도 행동계획의 또 다른 축이다. 첨단 그래픽처리장치와 국산 AI반도체를 기반으로 대규모 슈퍼컴퓨팅급 데이터센터와 중소 규모 강소형 데이터센터를 병행 구축해, 기업과 연구기관이 고성능 연산 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AI·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립해 컴퓨팅 파워, 데이터, 보안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관리하는 이른바 AI 고속도로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한 AI 인프라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피지컬AI 세계 1위 목표는 가상 공간을 넘어 로봇, 물류, 제조 장비 등 물리적 시스템에 AI를 탑재하는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센서 데이터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정교하게 반영하는 모델, 실시간 제어 알고리즘, 안전성 검증 체계 등이 핵심 경쟁 영역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관련 핵심기술과 데이터셋을 집중적으로 확보하고, AI를 활용한 과학적 발견 가속화 체계를 구축해 연구·산업 전반의 혁신 속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AI 확산 과정에서 제기돼 온 법적·윤리적 우려를 다루는 규제 정비도 포함됐다. 정부는 AI 학습용 데이터로 활용되는 원본 개인정보와 저작물이 창작자와 당사자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쓰일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데이터 비식별화 기준, 학습 데이터 수집·이용 투명성, 권리자 보상 구조 등 세부 논의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는 유럽연합의 AI법, 미국의 AI 행정명령 등 글로벌 규범 경쟁에 대응하는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규제 불확실성 없이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지역 균형 발전 전략도 AI와 결합한다. 정부는 K AI 특화 시범도시를 단계적으로 조성해 산업·교통·에너지·행정에 AI를 전면 도입한 도시 운영 모델을 실증할 계획이다. 동시에 5극 3특 구상을 통해 권역별로 다른 산업 구조와 인구 특성을 반영한 AI 활용 전략을 짜, 지역마다 고유한 성장 엔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제조 거점 지역은 스마트팩토리와 로봇, 농업 지역은 스마트팜과 기후 데이터, 의료 인프라가 강한 지역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연계하는 방식이 논의될 수 있다.
정부는 기술 발전이 노동, 복지, 교육, 의료 등 기본 제도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AI 기본사회 추진계획도 수립한다. 지난달 제안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I 이니셔티브를 발판으로, 한국식 AI 기본사회 모델을 국제무대에 전략적으로 알리고 AI 경제·안전 생태계 논의를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AI가 일자리 구조와 사회 안전망, 평생교육, 기본 의료 서비스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중장기 사회 설계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임 부위원장은 이번 행동계획안이 인프라 확보, 인재 양성, 규제 혁신, 산업 지원 등 토대 마련에 큰 비중을 두고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처 간 이기주의나 조정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정 사안은 정해진 시한 안에 협의를 마치도록 설계한 이른바 깔때기 전략형 과제를 다수 포함했다고 강조했다. 민간 화이트해커와 민간 클라우드 활용처럼 민간 전문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정책 설계를 한 것도 속도전을 의식한 행보로 평가된다.
행동계획에는 구체적인 이행 시한도 담겼다. 정책 권고사항 300개 중 내년 1분기까지 추진해야 할 과제가 86개로 전체의 28.7퍼센트를 차지한다. 내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 161개, 53.7퍼센트가 집중 배치됐으며, 2027년까지 마무리해야 할 과제가 53개, 17.7퍼센트다. 대부분 정책이 향후 2년 안에 가시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가도록 설계된 셈이다.
국가AI전략위는 이번 행동계획안에 대해 16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각계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간다. 산업계, 학계,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해 최종안을 확정한 뒤 범정부 추진체계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AI 투자 조정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제시한 속도전 전략과 피지컬AI 1위 목표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행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