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흐림 속에 더 걷고 싶다”…양평에서 만나는 고요한 여름의 여행지
라이프

“흐림 속에 더 걷고 싶다”…양평에서 만나는 고요한 여름의 여행지

허준호 기자
입력

흐린 날이면 여행을 미룰 이유가 없어진다. 요즘 양평에는 쾌창한 하늘 대신 구름이 머무르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날씨에도 조용히 이곳을 찾는다. 맑음만을 기다리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흐림 속 여유가 더욱 특별한 하루의 일상이 됐다.

 

실제로 양평의 대표 명소 중미산천문대는 구름이 걷히는 밤이면 별을 볼 수 있지만, 구름 많은 날에는 숲 산책로를 따라 사색하거나 자연 속에 파묻혀 일상과 멀어지는 재미가 있다. 포근하게 흐린 날씨가 오히려 산책을 부추긴다. 가족 단위라면 넓은 초지에서 양들과 어울릴 수 있는 양평양떼목장이 인기 코스다. 흐릿한 하늘 아래에서도 아이들은 들판을 달리고, 부모들은 잔잔히 여유를 느끼며 함께 산책한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용문사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용문사

숲과 절집이 어우러진 용문사에서는 천년의 고요함이 한층 깊어진다. 바쁘고 뜨거운 열기 대신, 춤추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내를 걷다 보면 흐린 하늘마저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분위기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구둔역 폐역이 제격이다. 오래된 간이역은 비가 올 듯한 하늘 아래에서 아련한 감성을 자아내고, 색이 덜한 흔적들이 오히려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관광 관련 설문에서도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양평을 찾는다"는 의견이 꾸준히 이어진다. 자외선 지수가 '보통'에 미세먼지까지 '좋음'으로 나타난 흐림의 오전, 아이 손을 잡고 동네 고인돌을 따라가 보는 가족부터, 잔잔한 강가의 벤치에서 혼자 책을 읽는 여행자까지, 여행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여행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여행의 태도’라 부른다. "사계절 내내,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도 각기 다른 풍경과 감정이 여행의 이유가 된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흐린 날씨에는 사람들도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SNS에는 “흐림을 핑계 삼아 더 오래 머문다”, “사람이 적어 오히려 자유롭다”는 솔직한 후기들도 쏟아진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맑은날만이 아니라 흐린 날에만 느낄 수 있는 특정한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양평의 여름 풍경은 날씨와 묘하게 어울린다. 구름의 질감만큼이나 폭신하게 펼쳐진 양떼목장, 바람이 살며시 안기는 용문사 숲길, 그리고 선사시대 흔적을 따라 걷는 양수리고인돌까지―작고 낯선 장소들이 흐림 속에서 전혀 다른 표정으로 다가온다.

 

결국 여행이란 찬란한 하늘 아래서만이 아니라, 흐린 날의 조용함 속에서도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일 것이다. 양평에서 누리는 긴 산책, 느린 체험, 사색의 시간은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삶도 천천히 방향을 바꿔 가고 있다.

허준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양평#중미산천문대#양수리고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