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6G 여는 테라헤르츠 양자소자…UNIST·아주대, 고전압 장벽 낮췄다

박진우 기자
입력

6G 통신 시대를 겨냥한 초고속 양자 터널링 소자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수조 번에 이르는 초고주파 신호를 처리해야 하는 6G에서는 기존 반도체 소자의 작동 속도와 발열 한계가 문제로 거론돼 왔다. 울산과학기술원과 아주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테라헤르츠 대역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양자 소자를 선보이며, 업계가 지적해 온 고전압 구동과 열 파괴 문제를 동시에 낮추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라헤르츠 양자 소자는 6G 통신뿐 아니라 차세대 광통신, 양자 센싱 등 초고속 정보 처리 산업 전반의 핵심 부품으로 꼽혀 파급력이 주목된다.

 

UNIST 물리학과 박형렬 교수 연구팀과 아주대학교 물리학과 이상운 교수 연구팀은 강한 전기장을 견디지 못해 손상되던 기존 테라헤르츠 양자 소자의 구조를 개선한 신형 소자를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에 20일 온라인 게재됐다.

테라헤르츠 양자 소자는 1초에 10의 12제곱 번 진동하는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해 전자의 양자 터널링을 유도하는 구조다. 터널링은 전자가 고전적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에너지 장벽을 양자역학적 확률로 통과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 현상을 제어하면 기존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류를 스위칭할 수 있어, 6G처럼 대역폭이 극도로 넓은 통신 환경에서 초고속 신호 처리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터널링을 유도하기 위해 3 V/nm 수준의 매우 강한 테라헤르츠파 전기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전기장은 소자 내부에 큰 발열을 일으켜 금속 전극을 녹이거나 구조 자체를 손상시키는 한계로 이어졌다. 고출력 테라헤르츠 구동이 사실상 불가능해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연구팀은 터널링을 일으키는 에너지 장벽 자체를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테라헤르츠 양자 소자는 기본적으로 금속 전극 사이에 초박형 절연체를 끼운 구조인데, 기존에 쓰이던 산화알루미늄 절연층을 이산화티타늄으로 바꿔 에너지 장벽 높이를 낮춘 것이다. 제1저자인 지강선 연구원은 강한 전기장으로 전자를 밀어내는 기존 방식 대신, 전자가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터널링은 확률적 현상이기 때문에 장벽이 조금만 낮아져도 통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필요한 전기장 세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팀은 원자층증착 공정을 최적화했다. 원자층증착은 서로 다른 원료 기체를 번갈아 주입해 기판 위에 원자를 한 층씩 쌓는 박막 형성 기술로, 반도체 로직과 메모리 양산 공정에서 표준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이산화티타늄을 금속 전극 위에 증착할 때는 산소가 빠져나가며 원자 크기의 미세 구멍인 산소 공극 결함이 생기기 쉬운데, 이는 누설 전류 증가와 소자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아주대 이상운 교수는 반도체 양산 공정에 쓰이는 최신 원자층증착 조건을 차세대 양자 소자에 적용해 이 같은 산소 공극 결함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터널링 특성이 균일하면서도 고전계에 견디는 고품질 절연막을 확보했다.

 

연구 결과, 새로 개발된 소자는 약 0.75 V/nm 수준의 전기장에서도 안정적으로 터널링을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요구 전기장의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전기장이 약해진 만큼 발열도 줄어들었고, 이산화티타늄 자체의 열 배출 성능이 좋아 고출력 구동 시 과열 위험도 완화됐다. 실제로 연구팀은 테라헤르츠파 투과율을 최대 60퍼센트까지 조절하는 가혹 조건에서 1000회 이상 반복 구동 시험을 수행했지만 눈에 띄는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 작동을 확인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6G용 테라헤르츠 소자 개발 경쟁에서 기술적 난제를 정면 돌파한 사례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반도체·통신 장비 업체들은 이미 테라헤르츠 대역 안테나, 필터, 스위치 등 핵심 부품을 확보하기 위한 선행 연구에 나선 상태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금속 전극과 절연층으로 구성된 비교적 단순한 구조에 상용 반도체 공정 기술인 원자층증착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향후 대량 생산과 기존 공정 라인 적용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6G 통신뿐 아니라 차세대 광통신, 양자 센싱, 초고속 이미징 등 응용 분야도 넓다. 테라헤르츠 대역은 전파와 빛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어 고속 데이터 전송과 동시에 물질의 분광 정보까지 읽어낼 수 있어, 고감도 센서와 보안 스캐너 등에도 활용 여지가 크다. 안정적인 터널링 소자는 이런 테라헤르츠 시스템의 핵심 부품으로, 신호를 켜고 끄거나 세기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향후 본격 상용화를 위해서는 패키징 과정에서의 열 관리, 대면적 웨이퍼 기준 균일도 확보, 장기 신뢰성 검증 등 추가 과제가 남아 있다. 또한 테라헤르츠 대역 활용을 둘러싼 국제 표준과 주파수 할당, 전자파 안전 기준 등 정책 이슈도 정리돼야 한다. 각국 정부와 표준화 기구가 6G 주파수 밴드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테라헤르츠 대역 활용 폭이 결정되는 만큼, 관련 장비와 소자 생태계의 성장 속도도 이에 연동될 전망이다.

 

박형렬 UNIST 교수는 테라헤르츠 양자 소자의 상용화를 가로막던 고전압 구동과 열 파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한 점을 강조하며, 6G를 넘어선 미래 광통신 소자와 고감도 양자 센싱 분야의 원천 기술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계는 이러한 연구가 실제 공정 라인과 제품에 얼마나 빠르게 접목될지, 그리고 6G 표준 경쟁 구도 속에서 어떤 전략적 우위를 제공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unist#아주대학교#테라헤르츠양자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