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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약물복합체 품질기준 선제 제시…식약처, ADC 개발 가속 노린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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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약물복합체 기술이 차세대 항암제 시장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국내 규제당국이 품질 평가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며 개발 생태계 정비에 나섰다. 항체와 세포독성 약물을 결합한 이 모달리티는 정밀 표적 치료의 대표 플랫폼으로 꼽히지만, 복잡한 구조와 제조 공정 탓에 품질 일관성 확보가 가장 큰 난제로 지적돼 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신약 허가 전략의 기준점이 되면서 글로벌 규제 조화 경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소속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28일 항체약물복합체의 품질 평가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정리한 항체약물복합체의 품질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한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항체약물복합체 개발과 허가 사례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후보물질 설계 단계부터 허가 신청까지 전 주기에 적용 가능한 품질 관리 기준을 공식 문서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항체약물복합체는 특정 암세포를 인지하는 항체, 세포를 사멸시키는 고독성 약물, 두 성분을 화학적으로 연결하는 링커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항체의 표적 결합 특성과 링커의 안정성, 약물 방출 속도가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라 제조 공정 중 미세한 조건 변화만으로도 약효와 안전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항체당 몇 개의 약물이 결합했는지를 나타내는 약물부착비와 결합 위치, 링커의 분해 특성은 핵심 품질 속성으로 꼽힌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항체약물복합체 특이적 주요 품질 속성을 정리하고, 개발 단계별와 제조 단계별로 어떤 품질시험 항목을 갖춰야 하는지를 상세히 제시했다. 예를 들어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항체와 약물의 결합 패턴과 불균질성 평가에 초점을 두고, 비임상 및 임상 단계 진입 시에는 불순물 프로파일, 제형 안정성, 장기 보관 시 품질 변화 등으로 평가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이다. 제조 공정 밸리데이션 과정에서 요구되는 분석법 검증과 재현성 검토 항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상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제조 방법 변경에 대해서도 세부 고려사항을 담았다. 원료 항체 생산세포주 변경, 링커나 약물 합성 경로 변경, 반응 조건 최적화 등 공정 변동 시 어느 수준까지 품질 특성 비교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지, 추가 비임상 또는 임상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은 어떤 경우인지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허가 심사 과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허가 신청 시 제출해야 할 품질 관련 자료 구성과 작성 방법에 대한 안내도 포함했다.

 

그동안 항체약물복합체는 구조와 제조 공정이 복잡한 데 비해 세계적으로 참고할 만한 공인 품질 가이드라인이 거의 없어, 각 기업이 경험적으로 설정한 내부 기준이나 개별 국가 심사 사례에 의존해 왔다. 특히 링커의 체내 안정성과 약물 방출 프로파일을 어떻게 규정하고 시험할지에 대해 규제당국 간 관점 차이가 존재해 글로벌 임상 개발 전략 수립에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조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 최소한의 규제 기준선을 명확히 확보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항체약물복합체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급성장 중이다. 여러 제품이 고형암과 혈액암 분야에서 승인·판매되고 있으며, 차세대 링커와 비전통적 항체 구조를 활용한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수 바이오기업과 제약사가 고형암, 재발성 난치암을 표적하는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지만, 생산 공정 고도화와 품질 시스템 구축이 상업화 성공의 관건으로 꼽힌다. 특히 CDMO를 통한 위탁생산이 늘면서, 개발사와 생산사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규제 기준의 필요성이 커졌다.

 

글로벌 규제 환경과 비교하면, 미국과 유럽은 개별 품목 심사를 통해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항체약물복합체 심사 관행을 발전시켜 왔으나, 품질 평가에 특화된 포괄적 가이드라인은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품질 평가 중심의 문서화된 기준을 조기에 제시한 것은, 신흥 바이오 규제 허브로서 존재감을 키우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향후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나 양자 협의 과정에서 국내 기준이 논의의 참고점으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안전평가원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발간으로 업계가 항체치료제 분야의 새로운 치료적 접근법인 항체약물복합체를 개발하는 초기 단계부터 시행착오를 줄이고 제품화를 앞당기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규제과학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품질 기준의 명확화가 개발 실패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 기반 고도화와 기술 수출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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