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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노인 우울 조기 포착”…정신의료, 디지털 진단 전환 분기점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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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고령층 정신건강의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의료계 안팎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 헬스 기술을 활용한 조기 진단과 관리 체계 구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다수의 기저질환과 인지 저하가 겹치는 노년기에는 정신과적 증상이 신체 증상에 가려지기 쉬워, 전통적 면담 중심 진단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는 우울 증상을 정량적으로 포착하는 AI 기반 평가 도구와 웨어러블,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이 향후 고령사회 정신건강 전략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노년기 우울은 65세 이상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지만, 진단 시점이 늦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 피로감, 수면 변화, 통증 같은 비특이적 신체 증상이 먼저 나타나고, 여러 진료과를 전전한 뒤에서야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우울 기분과 흥미 상실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식욕 변화, 불면 또는 과수면, 사고력 저하, 자살사고 등 5가지 이상 증상이 동반되면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되지만, 실제 현장에선 환자와 가족 모두 이 변화를 ‘나이 탓’으로 설명하며 방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년층 우울의 심각성은 자살 통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내 전체 인구 기준 연간 자살 사망은 10만 명당 26명 수준이지만, 65세 이상에서는 40명대를 기록해 고령층이 현저히 높다. 의료계는 우울증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요 위험 요인인 만큼, 단계별 스크리닝 체계와 디지털 기반 지속 모니터링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병원 방문 시 설문지 형태로 진행되던 우울 평가를 모바일 앱, 스마트워치, 음성·표정 분석 솔루션과 연동해 일상 속에서 지속 측정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히 고령층 우울은 젊은 층과 표현 양상이 뚜렷하게 다르다. 젊은 환자가 무기력, 죄책감, 우울감 자체를 호소하는 데 비해, 노년 환자는 두통, 어지러움, 가슴 두근거림, 소화불량, 허리통증 등 변화무쌍한 신체 증상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심전도, 뇌 영상, 위·대장 내시경 등 각종 검사에도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반복되며 진료가 장기화되기 쉽다.  

 

의료계는 이 과정을 줄이기 위해, 진찰실 단계부터 AI 기반 문진 시스템을 통해 우울 가능성을 동시에 탐지하는 통합 플랫폼 필요성을 제기한다. 환자의 연령, 기존 질환, 복용 약물, 최근 스트레스 요인과 함께 신체 증상의 양상과 빈도를 입력하면 우울·불안 지수를 계산해 의사에게 경고를 주는 방식이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해 환자 진술의 단어 선택, 말 속도, 음성 톤 변화를 분석하는 시도도 글로벌 스타트업과 일부 대학병원에서 진행 중이다.  

 

노년 우울은 삶의 사건과 구조적 변화와도 밀접하다. 은퇴, 자녀 독립, 배우자와 친구의 상실, 경제력 저하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실 경험은 무력감과 무가치감을 키운다. 단기적 슬픔 반응은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이지만,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돼 수면, 식사, 사회 활동이 붕괴될 경우 명백한 치료 대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대개 집안, 소규모 지역사회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기 때문에, 의료권에 포착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는 여기서 기술적 기회를 본다. 고령층 대상 웨어러블 기기와 홈 IoT 센서를 통해 수면 패턴, 활동량, 외출 빈도, 통화·메시지 사용량 변화를 분석하면 삶의 리듬이 급격히 저하되는 시점,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는 패턴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연구에서는 활동량 감소와 수면 분절이 노년 우울의 초기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치매와의 밀접한 연관성도 기술 도입 필요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노년기 치매 환자의 30~80퍼센트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반대로 우울증이 심한 노인에서 주의력과 집행기능 저하가 나타나 ‘가성 치매’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치매와 달리 우울성 인지 저하는 적절한 치료 후 인지 기능이 개선될 여지가 커, 조기 감별이 핵심이다.  

 

국내외 연구진은 기억력 테스트 결과, 언어 유창성, 시공간 기능 등 신경심리검사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치매와 우울성 인지 저하를 구분하는 알고리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뇌 MRI, PET 영상과 혈액 바이오마커까지 결합하는 멀티모달 분석 기술이 더해지면서, 향후 노인 정신건강 진단은 영상의학, 유전체, 행동 데이터가 통합되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기술 발전만으로는 상용화에 도달하기 어렵다. 고령층 정신건강 데이터는 의료정보와 생활 패턴, 위치 정보까지 포함하는 민감 정보인 만큼, 개인별 동의 기반 데이터 수집과 비식별화 기술, 저장·전송 단계의 암호화가 필수다. 고령층 특성상 스스로 앱을 설치하고 동의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문간호 인력과 지역 보건소, 복지센터를 통한 오프라인 연계 프로세스 설계도 함께 요구된다.  

 

규제 환경도 변수다. 현재 우울 선별 앱과 일부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인허가를 받기 시작했지만, 노인 우울에 특화된 AI 진단 보조 도구와 예측 모델은 아직 제도권에서 정의가 모호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높은 정확도와 안전성을 전제로 우울 위험도 분류와 치료 반응 예측까지 맡는 ‘고위험 의료 AI’는 별도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의학계는 기술 도입이 진료 현장의 시간을 절감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본다. 반복적으로 진행하던 설문 평가와 일상 리듬 파악을 디지털 플랫폼이 담당하면, 의사는 제한된 진료 시간 동안 더 심층적인 상담과 약물·비약물 치료 전략 수립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알고리즘이 제시한 위험 점수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고령층 특유의 미묘한 정서 표현과 가족 관계 맥락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병원 외부에서의 관리 역량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병원 기반 진단 후, 지역 커뮤니티 센터와 연계된 원격 모니터링, 온라인 집단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 화상 상담 등 비대면 서비스가 결합돼야 재입원과 응급상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해외에서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우울 증상 일지를 작성하면, AI가 자살 고위험 패턴을 탐지해 의료진과 보호자에게 즉시 알림을 보내는 시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년기 우울을 더 이상 ‘노화의 일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적극 치료하는 것이 개인의 삶의 질을 지킬 뿐 아니라,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의 인적 자원을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는 분석이다. 기술과 의료, 돌봄 시스템을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고령사회 정신건강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와 정책 당국 모두의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산업계는 결국 이러한 디지털 정신의료 기술이 실제 노년층의 일상과 의료 현장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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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우울증#ai정신의료#치매감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