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병영 만세운동 학교에서 다시 숨 쉰다"…독립유공자 후손, 역사서 기증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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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둘러싼 기억 투쟁과 지역 공동체의 책무가 다시 맞붙었다. 울산 병영 지역 독립운동의 장면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됐던 학교에 돌아오면서, 지역 정치·사회 현장에서의 역사 계승 논의도 힘을 얻고 있다.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초등학교는 10일 46회 졸업생인 이상천 씨가 병영 4·4 운동사와 지역 애국지사 약력을 집대성한 역사서 3권을 학교에 기증했다고 전했다. 기증된 자료는 1993년, 1997년, 2007년에 각각 발행된 병영 지역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이다.

이상천 씨는 독립유공자 고 이종룡 선생의 손자다. 이종룡 선생은 형인 이종근 선생과 함께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4월 4일 병영초등학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울산 병영 일대 항일운동사의 핵심 주역으로 평가돼 왔다.

 

역사서에는 병영 지역의 군사·정치적 위상이 먼저 정리돼 있다. 병영이 조선 태종 15년 이후 500여 년간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이 위치한 군사 요충지였다는 점, 그리고 그 교정에서 100여 년 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돼 있다.

 

특히 1919년 병영 만세운동의 구체 장면이 생생하게 담겼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독립만세운동은 4월 4일 오전 9시를 기점으로 전개됐다. 축구공을 힘차게 차올리는 행위를 신호로 독립선언서가 교정에서 낭독됐고,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병영의 상징으로 불리는 36계단을 내려가며 시가행진을 시작한 장면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일제 통치에 대한 지역 주민의 저항감도 기록 속에 드러난다. 일본 순사들이 병영 일대에서 울려 퍼지는 만세 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파출소로 쓰이던 주재소를 비우고 숨었다는 일화가 포함돼 있어, 당시 시위의 기세와 현장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학교 측은 이 자료들을 단순한 졸업생 기증품이 아니라 지역 정치와 교육 현장을 잇는 역사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병영초등학교는 전달받은 역사서를 교내 역사관에 상시 전시해 학생과 주민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 사회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 비치함으로써, 독립운동사를 공유하는 공론의 장을 넓혀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기증자인 이상천 씨는 선대의 항일운동과 자신의 역할을 연결하며 소회를 전했다. 그는 "우리 병영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잊지 않고 후배들에게 알리는 것이 저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료들이 학생들에게 선배들의 기개를 기억하고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역사 기록의 보존을 넘어, 청소년 세대의 시민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다.

 

이상천 씨는 이날 역사서와 함께 부친 고 이재우 선생이 직접 작곡한 병영초등학교 교가의 친필 원본도 학교에 전달했다. 이재우 선생은 평산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자이자, 병영초등학교 교가를 만든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혈연으로 이어진 독립운동가와 교육자의 삶이 한 자리에서 조명되면서, 지역 교육계에 뿌리내린 항일 정신과 민주 시민 교육의 연결 고리가 다시 환기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역 정치권과 교육계는 이런 기증 사례를 기반으로 독립운동 기념 사업과 역사 교육 강화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병영초등학교는 교내 역사관 전시를 시작으로, 학생 참여형 탐방 수업과 지역 주민 대상 강연 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내고 있어, 향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과 연계 사업 논의도 뒤따를 전망이다.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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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천#이종룡#병영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