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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80년 도전의 유산”…정의선, 디자인·안전 중심 재도약→전략 재정립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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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창립 80주년을 맞은 기아의 정체성을 ‘도전’과 ‘미래 지향적 디자인’으로 규정하며, 자율주행 기술 경쟁 속에서도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전략적 방향을 분명히 했다.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정 회장은 기아를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에 비유하며, 강한 개성과 잠재력을 정교하게 다듬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견고한 존재감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기아가 수행해 온 실험적 역할과 굴곡의 역사를 되짚으며, 과거의 성공과 실수를 모두 향후 전략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정 회장은 1944년 창립한 기아가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거친 변곡점을 언급하며, 1998년 현대차 인수 이후 자신의 역할을 조용히 복기했다. 그는 2005년 당시 기아차 사장으로 선임된 뒤 구조조정과 사업 정상화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 브랜드의 디자인 경영을 본격화한 바 있다. 슈라이어의 합류는 기아 전 라인업의 디자인 정체성을 재정의한 계기로 평가돼 왔으며, 이후 기아가 강렬한 스타일과 차별화된 외관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핵심 기반이 됐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기아 80년 도전의 유산”…정의선, 디자인·안전 중심 재도약→전략 재정립
“기아 80년 도전의 유산”…정의선, 디자인·안전 중심 재도약→전략 재정립

그는 과거 위기 국면을 떠올리며, 회사를 맡았던 시기에 “정말 망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금융권을 찾아다니며 자금을 조달했던 경험을 상기했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내부 팀워크였다”고 밝힌 대목은, 현재의 기아 경영 기조에서도 협업과 조직 결속을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국민과 정부, 그리고 임직원에게 80년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주체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과거를 정확히 알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을 위한 기념행사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과거의 궤적을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전략 점검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정 회장은 기아 특유의 브랜드 DNA에 대해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광물처럼, 기아는 원초적 강인함과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정교하게 가공해 나간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욱 빛나는 보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평가는 현대차와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구조로 재편되는 자동차 산업 환경 속에서 기아를 보다 과감한 디자인과 새로운 세그먼트 개척의 전위 브랜드로 유지하겠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향후 핵심 과제로 부상한 자율주행 분야에 대해서는 신중한 톤을 유지했다. 정 회장은 중국 업체와 테슬라 등 경쟁사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기술적 격차가 존재할 수 있음을 담담히 언급했다. 다만 그는 격차의 크기보다 더 중대한 요소로 ‘안전’을 꼽았고, 향후 자율주행 및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 개발에서 안전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는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센서 융합 기술, 고정밀 지도와 통신 인프라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장에서 속도 경쟁보다는 신뢰와 안전성을 강조하는 브랜드 포지셔닝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정 회장은 기아의 역사에서 반복됐던 굴곡과 위기를 언급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자세가 기아의 본질적 유전자라고 규정했다. 그는 김철호 창업주가 지녔던 개척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정몽구 명예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구축해 온 제조 경쟁력과 품질 기조를 함께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발언을 두고, 기아가 전동화 전환과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체제로 나아가면서도 품질과 안전이라는 현대차그룹의 전통적 강점을 기아식 디자인과 브랜드 개성 위에 중첩시키려는 전략적 시도로 해석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전반이 전기차 전환, 배터리 공급망 재편,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라는 네 갈래의 변곡점에 서 있는 가운데, 기아는 이미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모빌리티 서비스, 목적기반모빌리티 등 신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 회장이 다시금 ‘도전’과 ‘안전’, ‘디자인 정체성’을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단기 실적과 기술 격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 브랜드 가치를 축적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아가 그간 보여 온 과감한 모델 전략과 디자인 혁신이 안전과 품질의 토대 위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되는지에 따라, 향후 10년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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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기아#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