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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외교·남북회담 실무 지휘했다”…서동권 전 안기부장 별세, 향년 93세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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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원로 안보 라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노태우 정부 시기 북방외교와 남북고위급회담 실무를 진두지휘했던 서동권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93세다.

 

유족에 따르면 서 전 부장은 이날 0시 17분께 서울 순천향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의 대외전략과 남북 대화의 실무를 책임진 정보기관 수장으로, 냉전 종식기에 한반도 외교 지형 변화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평가돼 왔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인 서 전 부장은 경북고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 8회에 합격해 1961년부터 검사로 재직했으며, 1981년 대검찰청 차장검사, 1982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1985년 검찰총장을 지냈다. 1987년 변호사로 개업하며 잠시 공직을 떠났다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맡으며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안기부장 시절 그는 정부의 북방외교 정책에 역점을 두고 1990년 열린 1·2차 남북고위급회담의 실무를 총괄했다. 이 회담은 이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 전 부장은 1990년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정상회담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월간조선 2005년 5월호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한 바 있다. 서 전 부장은 “회담은 1990년 10월 1일 주석궁에서 열렸다”며 “북한 측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그 아들 김정일 총비서, 임춘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윤기복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장이 배석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주석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테이블 앞에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이 잘 들리도록 증폭기를 마련해 놓았다”며 “당시 방북은 안기부장 자격이 아니라 대통령 특사 자격이었기 때문에 김 주석은 저를 ‘서동권 부장’이 아니라 ‘서동권 특사’로 불렀다”고 회고했다. 이 발언은 당시 남북 간 채널이 정보기관 수장을 매개로 가동됐던 시대적 정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돼 왔다.

 

그를 둘러싸고는 노태우 대통령 지시에 따른 핵 개발 구상에 관여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서 전 부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고 서수종 전 의원은 1994년 언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1년 6개월 전쯤 우리 국방을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징후 등을 놓고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준비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과학기술 정책 라인에 있던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도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에서 유사한 정황을 소개했다. 그는 “1990년 말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 반대 시위 당시 정부는 ‘75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플루토늄 추출 핵무기화 프로젝트까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며 “1990년 12월 12일 궁정동 안기부 안가에서 점심이 있었다. 서동권 부장으로부터 구두로 75% 국산 가능 핵 구상 소리를 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때 한필순 원자력연구소 소장이 강하게 이야기하자, 서 부장은 ‘아직 미정이나 개발 구상’이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서 전 부장은 1992년 대통령 정치 담당 특별보좌관을 끝으로 청와대를 떠난 뒤에도 정치·외교 현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원로 역할을 이어갔다. 그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검찰동우회 회장을 맡아 검찰 선후배들을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을 했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대통령 통일고문을 지내며 남북관계 자문에도 나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대우자동차판매 사외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동서법률문화연구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며 법조·학계와의 교류를 이어갔다. 검찰 역사 정리에 관심을 기울여 한국검찰사를 저술하는 등 법조계 연구에도 관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족에 따르면 서 전 부장은 생전 야구를 각별히 사랑했다. 경북고 야구부 후원회장을 맡아 모교와 지역 야구 지원에 힘썼고, 유족은 “고인이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경북 지역 야구의 황금기를 이끄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부인 유영세 씨와 2남 4녀를 뒀다. 자녀로는 서진이 씨, 서은숙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필명 서하진으로 알려진 서덕순 경희대학교 교수, 서덕귀 씨, 서덕일 김앤장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 서덕홍 사업가가 있다. 사위는 유종열 전 한국은행 국장, 남순열 하나이비인후과 원장, 박진헌 사업가, 이성복 변호사이며, 며느리는 정재은 씨와 한원선 씨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2월 1일 오전 9시 20분으로 예정됐고, 장지는 경기도 광주 선영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보·외교 라인을 중심으로 조문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여야도 한 시대를 마무리한 정보·외교 책임자의 부고를 계기로 냉전기 안보정책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지 주목된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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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권#노태우정부#국가안전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