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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물들고 꽃에 쉬다”…정읍 내장사, 가을 느리게 걷기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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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에 쉼표 하나를 위해, 꽃이 피고 단풍이 짙어지는 계절이면 사람들은 ‘느린 여행’을 꿈꾼다. 예전엔 멋진 명소만 찾았지만, 이제는 풍경과 이야기, 사색과 감각에 더 마음을 기울인다. 이 가을, 정읍은 그런 여행자의 바람에 딱 맞는 도시다.

 

요즘 정읍에서는 내장사와 내장산 자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단풍을 담은 사진이 SNS를 수놓고, 정읍사문화공원의 산책길에서는 얕은 웃음이 가을볕에 스며든다. 꽃물결처럼 펼쳐진 구절초 정원에서는 풀 내음과 간이 의자에 앉은 이들의 조용한 대화가 이어진다. 여행자의 손에는 진한 커피와 방금 구운 빵, 그리고 휴대폰 카메라가 빠지지 않는다.

내장사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내장사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이런 변화는 숫자에도 드러난다. 가을 성수기 내장사 누적 방문객은 수십만 명을 넘어선다. 정읍구절초지방정원 역시 포토존과 산책로 덕분에 주말이면 현지 가족과 외지 여행객 모두로 북적인다.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베이커리와 카페가 여정의 도중 소소한 목적지가 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여기에는 ‘잠시 멈추기’가 여행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자리한다. 한 산책객은 “경내에서 발길을 멈추고 오래된 나무를 바라보니, 속이 환해졌다”고 적었고, 또 다른 방문객은 “구절초 정원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켰다”고 표현했다.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읍의 가을은 해마다 새롭다”며, 특히 가족 단위나 연인들이 산책과 사진촬영, 지역 빵집에서의 다정한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정읍은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조용히 걷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는 평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자연 속 느림’에 대한 현대인의 갈망이라고 본다. 한 여행 칼럼니스트는 “단풍 길이나 꽃 정원은,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는 일상의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풍경, 한 조각 빵, 천천히 걷는 삼십 분이 남기는 여운은 결코 작지 않다. 바쁜 하루에도 한 번쯤 자신만의 속도로 풍경을 걷는 선택.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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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정읍#정읍구절초지방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