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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보험 데이터결합” 차바이오·한화, K웰니스 플랫폼 노린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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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와 보험이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매개로 결합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차바이오그룹이 미국 차병원 네트워크를 거점으로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과 손잡고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의 새로운 보험·금융 모델 만들기에 나선다. 질환 위험을 사전 예측하고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로, 보험이 단순 보장 상품을 넘어 상시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국내 대형 금융·바이오 기업이 본격 시험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K웰니스와 보험의 융합 경쟁 구도를 촉발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바이오그룹은 4일 미국 LA 할리우드 차병원에서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과 바이오, AI·데이터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금융 분야 협력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룹 내 차바이오텍, 차헬스케어, 차AI헬스케어가 보유한 생명공학 연구 역량과 병원 네트워크,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기술을 한화 금융·보험 계열사의 고객 기반, 상품 설계 능력, 데이터 인프라와 결합하는 것이 골자다. 단순 제휴가 아니라 중장기 사업 모델을 염두에 둔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협력의 기술적 축은 AI와 데이터 분석이다. 차AI헬스케어가 병원·검진센터·모바일 앱 등에서 수집되는 건강데이터, 진료 정보,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정제하면, 한화의 보험 데이터와 결합해 질환 조기케어와 위험 예측 모델을 고도화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대 여성의 호르몬 변화, 생활습관, 과거 질환 이력을 통합 분석해 유방암·난소질환 등 발생 위험도를 기존 통계 모델보다 세밀하게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기존 보험사가 사용하는 리스크 평가 모델보다 변수 수와 분석 빈도를 크게 늘려 동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이번 협력은 기존 보험 영업 중심 구조의 한계를 넘어, 예방과 조기 개입을 통해 장기적인 의료비와 보험금 지출을 줄이려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험 상품 가입 시점에만 건강 상태를 평가하던 관행 대신, 가입 이후에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해 건강 데이터를 축적·관리하고, 질환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갈 수 있다. 업계에서는 만성질환자 관리나 고연령층 건강관리에서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실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양측이 우선 협력을 구체화하는 분야는 여성 프리미엄 웰니스와 예방의료다. 차바이오그룹과 한화손해보험은 여성 대상 웰니스, 예방의료, 항노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복합 헬스케어 사업을 공동 기획한다. 여성 특화 검진과 난임·임신·출산·폐경까지 생애주기 전반을 포괄하는 클리닉과 연계한 플래그십 여성 웰니스 센터 운영, 고가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담은 회원제 서비스, 항노화 진단·치료 패키지 등이 검토 대상이다. 단발성 검진이 아닌 지속적 모니터링과 생활습관 교정까지 포함하는 구조가 현실화되면, 보험사는 고부가가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리스크 데이터를 더 촘촘하게 확보할 수 있다.

 

한화생명과의 협력은 보다 정교한 디지털 헬스케어 모델에 방점이 찍힌다. 양측은 AI·데이터 기반 조기진단, 질환 위험 예측,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 앱으로 수집되는 활동량, 수면, 심박, 식습관 등 라이프로그 데이터에 병원 진료 기록과 유전체·검사 데이터를 결합한 뒤, AI 모델로 질환 발병 가능성을 추정하는 구조가 핵심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험 가입 심사와 보험료 산정은 물론, 가입자별 특화된 건강관리 콘텐츠와 병원 연계 서비스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플랫폼 구축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보험과 헬스케어의 융합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주요 보험사들은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과 손잡고 원격의료, 만성질환 관리, 건강 리워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는 유전체 분석과 폐암·심장질환 조기검진을 보험 상품과 연계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헬스케어 앱과 연동해 걸음 수나 운동량에 따라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형태의 단순 서비스가 등장했으나, 의료기관과의 연계, AI 기반 질환 예측까지 포함한 전주기 라이프케어 모델은 본격적인 확장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차바이오그룹과 한화의 협력은 병원 네트워크와 보험 인프라, AI 분석 역량이 모두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해외 사례와 직접 비교 가능한 실험 무대가 될 수 있다.

 

규제 환경은 변수이지만 동시에 기회 요인으로도 꼽힌다. 헬스케어 데이터와 보험 데이터의 결합은 개인정보 보호법, 의료법, 보험업법 등 다수 규제와 맞물린다. 민감정보인 건강정보를 보험 리스크 평가와 마케팅에 과도하게 활용하면 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데이터 비식별화와 가명처리, 활용 목적 제한 등 정교한 거버넌스가 필수다. 당국이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와 마이헬스웨이 같은 데이터 이동성 제도가 성숙하면, 이용자 동의를 전제로 헬스케어와 금융 간 데이터 연동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에 해당할 경우 식품의약품 규제와도 연계돼, 기술 설계 단계부터 규제 대응 전략을 내재화해야 하는 과제도 존재한다.

 

차바이오그룹과 한화는 중장기적으로 헬스케어와 금융을 연계한 협력 체계를 고도화해 생애주기 기반 라이프케어 밸류체인을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국내에서 서비스 모델을 다듬은 뒤, 미국 차병원 네트워크와 연계한 해외 보험-헬스케어 융합 사업, 이른바 K웰니스 플랫폼 수출도 검토 대상이다. 해외 현지 보험사와의 합작 모델, 원격상담·검진·치료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확장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차원태 차바이오그룹 부회장은 헬스케어는 생애주기 전반을 다루는 산업으로 단일 기업이 모든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며, 협력을 통해 라이프케어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국내 기반을 고도화한 뒤 글로벌 의료 네트워크와 연계한 해외 확장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나채범 한화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협력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웰니스 경험을 제공하고, AI·데이터 기반 디지털 솔루션도 함께 구축해 나가겠다며, 국내 협력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헬스케어와 보험을 융합한 K웰니스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산업계는 양측의 기술·데이터 융합이 실제 비즈니스 성과와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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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바이오그룹#한화손해보험#한화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