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 60명 미만이면 회의 중지"…여야, 필리버스터 규정 손질 정면충돌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법사위 표결로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졌다. 여당이 국회법을 고쳐 본회의장의 최소 출석 기준을 새로 두자, 필리버스터를 막을 장치라며 야당은 강력 반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본회의 필리버스터 진행 시 재적의원 5분의 1인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회의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표결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들의 찬성으로 처리됐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이 진행될 때 교섭단체 대표의원이 의사정족수 충족을 요청하고, 출석 의원이 60명에 미달하면 국회의장이 회의 중지를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사실상 일정 인원이 토론을 지켜보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멈추게 하는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의장단 부담을 줄이는 조항도 포함됐다. 개정안은 필리버스터 진행 중 국회의장이 무제한 토론을 직접 주재하기 어려운 경우, 의장이 지정하는 의원이 대신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여당은 장시간 회의 주재로 인한 의장단의 과중한 업무를 완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12월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흐름과 맞물려 이번 개정 논의가 속도를 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이 의사진행 저지 수단으로 필리버스터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여당이 제도 변경에 나섰다는 점에서다.
국민의힘은 표결 과정에서 강하게 맞섰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법사위에서 "소수 야당에 유일하게 남은 필리버스터 권한을 한마디로 박탈하려는 법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포악스러운 행위는 분명히 후대가 평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필리버스터 제도가 소수 의견 보장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며, 여당이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도 "필리버스터를 쉽게 중단하게 하는 법안을 해 국민에게 좋은 게 뭐가 있나"라며 "국민 입장에선 필리버스터 기간 양당의 논리를 더 정밀하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부 관련 입법을 거론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충돌 법안들인 사법부 침탈 법안들을 국민 모르게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을 국민은 다 눈치채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응 논리를 내세우며 맞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무의미한 필리버스터가 되지 않도록 좀 더 실질화한다는 측면에서 개정안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고 싶다면 좀 토론을 듣고 앉아 계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하며, 의사일정을 지연시키기 위한 소극적 참여를 막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여당은 형식적인 출석만 유지한 채 장시간 회의를 끄는 방식은 국민 설득력도 낮고 국회 운영 효율도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다수당이 출석 정족수를 명분으로 언제든지 토론을 끊을 수 있게 돼 필리버스터 본래 기능이 약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이달 중 열릴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본회의에서 과반 찬성을 얻으면 통과되며, 향후 필리버스터 운용 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본회의 표결 전까지 추가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법사위는 이날 가맹점주 협상권 보장을 확대하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은행 가산금리에 보험료와 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한 은행법 개정안도 각각 의결했다. 두 법안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상임위에서 180일 숙려 기간을 거쳤다.
숙려 기간이 끝난 두 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뒤 곧바로 통과됐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협상 구조를 정비해 가맹점주의 교섭력을 높이는 내용을 담았고, 은행법 개정안은 은행이 가산금리 산정 시 각종 비용을 예금자나 차주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다.
여당은 민생 입법 성과라고 평가하는 반면, 야당은 금융시장 부담과 기업 경영 자율성 축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두 법안 모두 이미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아온 만큼, 정쟁보다는 세부 시행 과정에서의 보완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달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과 민생 관련 법안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필리버스터 규정 변경을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법개혁 법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른 충돌이 재연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