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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0 퍼센트 구간 숨긴 웹젠 공정위 과징금 제재 파장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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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구조의 불투명성이 국내 게임 산업의 신뢰를 다시 흔들고 있다. 웹젠이 모바일 게임 뮤 아크엔젤에서 판매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실제와 다른 정보로 소비자를 오인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규제 당국이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조치를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정보 비대칭 문제에 대한 경고로 제시했고, 게임업계 전반에 걸친 규제 환경 재정비의 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형성되고 있다. 게임 내 확률 알고리즘과 소비자 보호를 둘러싼 제도 논쟁이 한층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전자상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웹젠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억58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대상은 모바일 게임 뮤 아크엔젤에서 판매된 세트 보물 뽑기권, 축제룰렛 뽑기권, 지룡의 보물 뽑기권 등 세 가지 확률형 아이템이다. 표면적으로는 희귀 아이템이 0.25 퍼센트에서 1.16 퍼센트의 확률로 제공되는 것처럼 안내됐지만, 실제로는 최소 51회에서 최대 150회 구매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희귀 아이템이 전혀 나오지 않는 구조가 숨겨져 있었다.

핵심은 이른바 바닥 시스템으로 불리는 내부 확률 설계 방식이다. 바닥 시스템은 일정 횟수 이상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뽑기를 진행했을 때 희귀 보상을 확정 지급하거나 확률을 크게 높이는 구조를 뜻한다. 웹젠의 경우 문제가 된 상품에서 특정 시도 횟수 이전 구간의 희귀 아이템 실제 획득 확률이 0 퍼센트였음에도, 전체 구간을 통합한 수치만 제시했다. 소비자는 각 뽑기 시도마다 공지된 확률로 희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공정위는 이러한 고지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저해하는 정보 비대칭에 해당한다고 봤다. 전자상거래법은 통신판매업자가 재화나 용역의 거래 조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사실과 다르게 알리거나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금지한다. 디지털 아이템이라도 실제 금전이 오가는 거래이기 때문에 법적 규율 대상이며, 특히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 구조에서는 개별 구간별 실제 획득 가능성의 투명한 공개가 핵심 변수로 지적된다.

 

웹젠은 외부 문제 제기 이후 뒤늦게 위법 요소를 인정하고 게임 내 확률 정보를 수정했으며, 해당 아이템 구매 이용자에게 일부 환불 등 보상 조치를 진행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조치의 범위와 실효성이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피해 보상을 받은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 2만226명 중 860명에 불과해 5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당수 이용자에 대한 금전적 피해나 심리적 손해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이번 제재는 확률형 아이템 운영 방식이 단순한 게임 기획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와 직결된 상거래 행위로 간주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국내 게임 시장 내에서는 내부 알고리즘과 실제 확률 분포는 영업 비밀이라는 입장과,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상세 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충돌해 왔다. 공정위의 결정은 바닥 구간처럼 사실상 0 퍼센트에 해당하는 영역을 숨긴 채 평균값만 제시하는 운영 관행에 제도적 제동을 건 사례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게임 산업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주요 규제 이슈로 부상했다. 유럽 일부 국가는 소위 가챠나 루트박스 시스템을 사행성 요소로 간주해 규제하거나 연령 제한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이후 각 뽑기에서의 희귀 아이템 획득 확률을 명시하는 관행이 정착됐다. 중국 역시 미성년자 보호를 명분으로 확률형 아이템 관련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게임물 관리 제도와 더불어 공정거래, 소비자 보호 차원의 규율이 점차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신판매업자인 게임사가 스스로 초래한 소비자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못한 경우 과징금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장 전반에 각인시키는 데 이번 조치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징금 수준뿐 아니라 시정명령을 통해 추후 유사 운영 관행을 막고, 확률 정보 표시 방식에 대한 내부 통제 강화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향후 쟁점은 확률형 아이템의 어느 수준까지를 중요한 거래 정보로 규정할 것인가에 모아질 전망이다. 단순 평균값뿐 아니라 구간별 확률, 누적 구매 시 확정 보상 조건, 내부 조정 알고리즘 존재 여부 등이 소비자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인정되면, 이를 누락하거나 모호하게 고지하는 행위는 반복해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 모델이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 매출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대형 게임사와 중소 개발사 모두 수익 구조 재검토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게임 산업이 자체 자율 규제만으로는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게임 이용자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확률 조작 의혹과 관련된 논란이 반복돼 왔고, 개별 기업의 사후 보상이나 내부 감사 발표만으로는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향의 법제 논의와 함께, 독립된 검증 기구나 외부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중장기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내세워 이용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엄정하게 제재하겠다고 예고하며, 재발 방지 장치와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성장 전략과 이용자 권익 보호 규범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규제 프레임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따라 게임 산업 전반의 신뢰와 수익 모델이 다시 정렬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는 확률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선택이 결국 시장 신뢰를 확보하는 전제 조건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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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젠#뮤아크엔젤#공정거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