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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초점인공수정체 미리 써본다"…여의도성모, 체험 클리닉로 백내장 선택권 확대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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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수술 기술이 환자 경험 중심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이 다초점인공수정체를 수술 전에 직접 체험해보고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면서다. 단순히 수술 방식과 렌즈 종류를 설명받는 수준을 넘어, 환자가 실제 시야 변화를 미리 경험한 뒤 본인에게 맞는 인공수정체를 고를 수 있어, 백내장 수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령화로 다초점인공수정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클리닉 개소를 다초점 렌즈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2025년 1월 8일 다초점인공수정체 체험 클리닉을 공식 개소한다고 22일 밝혔다. 백내장 수술을 앞둔 환자가 수술 전 다양한 다초점인공수정체를 직접 체험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국내 첫 전용 클리닉이다. 여의도성모 안과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고려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며, 체험 결과는 수술 계획과 렌즈 종류 결정에 직접 반영된다.  

백내장 수술은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한 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으로는 한 곳에만 초점이 맞는 단초점 인공수정체가 주로 사용돼 원거리나 근거리 중 한 방향 시력을 우선 회복하는 구조였다. 반면 다초점인공수정체는 하나의 렌즈에서 여러 초점을 만들어 원거리와 근거리를 모두 볼 수 있도록 설계된 렌즈로, 수술 후 안경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핵심 장점이다.  

 

다만 다초점인공수정체는 광학 설계에 따라 체감 성능 차이가 크다. 특정 디자인은 원거리가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보이거나 야간 운전 시 빛번짐이 심해지는 문제가 보고돼 왔다. 근거리 시력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콘트라스트 감도 저하로 글자 선명도가 떨어지는 등 환자 불만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같은 렌즈라도 환자의 직업, 생활 패턴, 야간 활동 여부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갈리는 점도 변수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체험 중심의 클리닉을 도입했다. 첫 단계에서는 황호식 교수가 개발한 휴대용 모델 아이를 활용한다. 모델 아이는 실제 사람 눈의 구조와 광학 특성을 모사한 소형 장비로, 다양한 다초점인공수정체를 삽입한 상태에서 시야를 촬영해 사진과 영상으로 구현한다. 환자는 수술 전에 각 렌즈별로 원거리·근거리 초점, 글자 선명도, 야간 빛번짐 양상 등을 모니터 화면으로 비교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실제 착용 체험이 이뤄진다. 인공수정체 체험장비에 실제 다초점인공수정체를 삽입한 뒤, 환자가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원거리 물체, 스마트폰이나 책과 같은 근거리 물체, 어두운 환경에서의 조명과 헤드라이트 같은 광원을 차례로 보게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각 렌즈별로 초점 전환 속도, 빛번짐 강도, 눈부심 정도를 직접 느껴볼 수 있어, 설명 중심 상담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웠던 체감 시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외 안과 시장에서는 다초점인공수정체 기술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회절형, 굴절형, 연속초점 타입, 난시 교정 기능 결합형 등 다양한 설계가 출시됐지만, 대부분 의사와 환자가 렌즈 특성을 설명과 안내 자료에 의존해 선택하는 구조였다. 미국과 유럽 일부 안과에서는 가상현실 기반 시야 시뮬레이터나 이미지 렌더링을 활용한 상담 도구가 도입되고 있으나, 실제 렌즈를 활용한 체계적인 체험 클리닉 형태의 운영은 드문 편이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이번 모델아이 기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환자 맞춤형 선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험 클리닉은 2025년 1월부터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에 정기 운영된다. 병원은 초기에는 여의도성모 안과병원 내 백내장 수술 예정자 중심으로 시범 적용하고, 향후 수요와 환자 만족도에 따라 운영 횟수 확대도 검토할 계획이다. 체험 과정에서 수집되는 환자 선호 패턴과 만족도 데이터는 향후 렌즈 선택 가이드라인과 알고리즘 정교화에 활용될 수 있어, 디지털 헬스 기반의 맞춤형 안과 진료 모델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황호식 교수는 체험 클리닉 도입 배경에 대해 환자 중심 선택권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환자가 본인의 생활패턴에 가장 적합한 인공수정체를 선택할 수 있어 수술 후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양한 렌즈별 체험 데이터가 축적되면, 직업군이나 연령, 야간 활동 빈도에 따른 최적 렌즈 조합을 제시하는 정밀의료형 상담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초점인공수정체 체험 클리닉이 백내장 수술을 단일 시술이 아닌 장기적 삶의 질 관리 과정으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백내장 수술 연령대가 낮아지고, 신체 활동과 디지털 기기 사용이 많은 환자가 늘어나는 만큼, 렌즈 선택 단계에서의 기술적 지원과 체험 기반 의사결정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체험형 클리닉 모델이 향후 다른 안과 수술과 인공렌즈, 시력교정 기술로 확산할지 주시하고 있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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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성모병원#황호식#다초점인공수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