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사법개혁 내용 될 수 없어"…문형배, 내란재판부·법왜곡죄에 경고성 발언
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법원 안팎으로 번지는 가운데 대법원이 연 공청회에서 여야가 추진 중인 사법제도 개편안을 두고 법조계 원로와 전직 고위 법관들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도입 등 쟁점 현안을 두고 삼권분립 훼손과 사법부 불신 심화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는 한편, 사법부 스스로도 내란 재판 지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자기비판도 제기됐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를 논의하는 공청회 마지막 순서로 100분 토론을 열었다. 토론에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김선수 전 대법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 조재연 전 법원행정처장, 차병직 변호사 등이 참석해 국회에 제출된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을 중심으로 현 정국을 진단했다.

문형배 전 권한대행은 토론 서두에서 현재 논쟁의 출발점을 짚으며 "휴먼 에러가 있다면 휴먼을 고쳐야지 시스템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사건처리와 관련한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면서도 "분노는 사법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사법개혁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특정 결정에 대한 정치권의 불만이 곧바로 제도 전면 개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문 전 권한대행은 삼권분립 원칙도 거론했다. 그는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입법자의 정신은 중용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며 "저는 사법개혁에 찬성한다. 민주당이 제시한 법안이 사법개혁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부의 개혁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법안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박은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금의 개혁 논쟁이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사법 독립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전문가 집단의 선의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고 대체로 사법행정의 협조 내지 소통 하에서 사법개혁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사법 체계 전반, 법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부분에 대한 압박을 사법부가 받고 있고, 일반인들에게도 이게 사법 개혁인지 사법 통제인지 헷갈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삼권분립의 수평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 위에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하듯, 입법부나 행정부가 사법부 위에 있을 수 없다"며 "3부 위에 있는 건 국민이다. 국민의 권리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3부를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입법·행정부의 개혁 시도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사법부 독립 역시 같은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재연 전 법원행정처장도 개별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사법부 전반에 대한 개편 논리로 확장되는 흐름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개개 판결 결과에 대해 여러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특별히 경청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전체 현재 사법부 개편 또는 개혁의 당연한 전제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삼권분립에서 견제와 균형을 말할 때 당연한 전제로 다른 권력에 대한 상호존중과 자기 권한에 대한 적절한 절제, 이것이 전제다"라며 "오늘날 세계 각국은 입법과 행정의 동조화 현상을 겪고 있다. 다른 한 축인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개혁 속도를 둘러싼 경고도 나왔다. 조 전 처장은 "법과 제도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제도 개편에 주저함이 없어야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역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개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속도전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선수 전 대법관은 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규정하며 민주당의 개혁안에 힘을 실었다. 그는 "우리 법원은 침몰하기 직전의 난파선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운을 뗀 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거대한 암초를 들이받고 좌초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여기에 일부 법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내란 사건 진행, 특검 영장 기각 결정 등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내란 극복을 방해하는 것 같은 행태로 침몰을 독촉하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민주당이 제시한 5대 사법개혁 과제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 제안된 5대 개혁과제는 12월 중에 입법을 완료해서 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2라운드 체계로 하급심 강화 등 본격적으로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치권의 입법 드라이브를 통해 1차 구조개편을 마무리한 뒤, 하급심 강화 등 추가 개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차병직 변호사는 개혁 강도를 둘러싼 양측 모두에게 자제를 주문했다. 그는 "과감한 개혁을 원하는 쪽에선 입장이 뒤바뀌어도 똑같은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면서도 "개혁 방향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느끼는 분들 역시 변화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급격한 변화 요구의 원인에는 변화를 바라지 않는 쪽에서 비롯된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정치권과 법조계 전반에 자기 성찰을 촉구했다.
토론회에서는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을 둘러싼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박은정 전 위원장은 내란전담재판부 구상에 대해 "민주당 안이 구체적 시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 경고성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 입김이 들어오는 특정 판사가 담당할 경우 내가 재판 당사자라면 그것에 승복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재판의 공정성과 당사자의 수용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위원장은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법 앞의 평등에 따라 정해진 절차에 의해 사법이 이뤄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사건 재판부를 향해 "현재 1심 재판부가 이 재판에 집중된 국민적 관심과 우려를 진지하게 여기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권 개입을 경계하는 동시에 사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한 셈이다.
문형배 전 권한대행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논의와 관련해 우려와 예외적 정당성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배당에 관해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도 "(특정 사건을 대상으로 한)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곧바로 위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예외적 정당성이 있는지가 문제인데, 내란 재판은 예외적 정당성을 긍정하기에 좋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란 사건의 특수성을 인정하되, 입법이 재판 독립을 침해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해석이 따른다.
문 전 권한대행은 사법부 스스로도 내란 사건 처리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이 단 1개도 선고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더욱 구속기간 계산 변경을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서 적용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며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내란 사건의 지연과 구속기간 변경 논란이 정치권의 개혁 명분을 키워준 측면이 있다는 취지다.
그는 해법으로 신속한 재판을 제시했다. "지금이라도 내란 재판은 신속하게 선고하고 법원이 기타 신뢰성 있는 조치로 분위기를 차분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게 왕도"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해야 정치권의 과잉 입법 논란도 수그러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법왜곡죄 도입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박은정 전 위원장은 "입법 취지가 나름대로 있다고 해도 이런 형태의 법조문은 성격상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법의 해석과 적용은 결국 법원에서 하게 될 텐데 결과적으로 법원의 재량을 키워주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특정 판결을 겨냥한 법이 오히려 법원 재량 확대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차병직 변호사는 더욱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법안의 수정이나 보완이 문제가 아니라 설치 자체가 문제"라고 선을 그으며 "더 심각한 건 법왜곡죄다. 국가보안법처럼 이상한 구성요건이 하나 추가되는, 정치 형법이 하나 탄생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형사법 체계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조항이 새로 생길 위험을 경고한 발언이다.
법원행정처 폐지를 둘러싼 논의도 도마에 올랐다. 박은정 전 위원장은 "법관이 재판이 아닌 행정 업무에 과도하게 힘을 쏟아야 하는 지금의 구조는 어느 정도 조정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외부 인사가 다수가 되는 합의제 독립기구가 행정처를 대체하는 방안에 대해선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되는 우려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 개편 역시 사법부 독립을 흔들 수 있다는 경계다.
토론 막판에는 원로 법조인도 직접 목소리를 보탰다. 방청석에 있던 이용우 전 대법관은 발언 기회를 얻어 "제 소신을 후배 법관에게 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다"라며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이를 파괴하려는 위헌적 입법이 시도되고 법관들의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골적 협박이 공공연히 자행됨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법관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단언하며 "온갖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꿋꿋하게 지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수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 독립은 외부에서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3천여 법관 각자가 재판에서 용기와 사명감을 지켜냄으로써 확보 가능하다"고 말하고, "행정당국은 법관들이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는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내외부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토론에서 드러난 의견은 대체로 사법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되, 정치적 분노와 정국 갈등이 입법으로 직결되는 방식에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으로 요약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도입, 법원행정처 폐지안은 삼권분립 원칙과 사법부 독립 훼손 논란 속에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거센 공방이 예상된다.
정치권은 내란 사건 재판 진행 상황과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며 사법개혁 관련 법안 처리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도입 여부를 포함한 사법개혁안을 본격 논의에 부칠 계획이며, 정부와 대법원도 후속 공청회와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제도 개편 방향을 마련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