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조 세포유전자치료"…한국화학연, 2035 미래 시나리오 제시
세포유전자치료가 고령화와 난치성 질환 증가에 대응하는 차세대 맞춤의료 기술로 부상하며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2021년 8조5000억원 규모였던 세계 시장이 2028년 117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산업적 파급력이 부각된다. 다만 고비용 구조와 안전성 논란, 규제와 사회적 수용성 등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면서 향후 10년이 산업 향방을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한국화학연구원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본 국내 유전자세포 치료의 미래 보고서를 내고, 2035년을 목표 시점으로 한 세포유전자치료 산업의 3대 미래상과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시장 분석과 국내 산업 구조 진단을 바탕으로 성장확산형, 부분 성장형, 침체위기형 등 세 가지 경로를 도출했다.

시장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세포유전자치료 시장은 2021년 약 8조5000억원에서 2028년 117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40퍼센트를 웃도는 고성장이다.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승인된 신약 구성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2023년 기준 신규 승인 신약 중 약 10퍼센트가 세포유전자치료제로 집계됐다. 2021년 6퍼센트, 2022년 7퍼센트에서 매년 비중이 올라가는 흐름이다.
세포유전자치료는 환자 세포를 이용해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세포치료와, 환자 DNA를 직접 교정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전달하는 유전자치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CAR T와 같이 환자 T세포에 키메라 항원수용체라는 인공 수용체를 발현시켜 암세포를 인지하게 하는 방식,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활용해 치료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화학 합성 의약품이나 단백질 기반 항체치료제와 달리 환자 맞춤형 설계가 가능해 난치암과 희귀유전질환 분야에서 대체 불가한 옵션으로 주목된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 분야가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라고 짚었다. 핵산 합성, 세포 배양, 유전자 도입, 품질관리 전 과정을 지배하는 GMP 수준의 생산설비 구축에 초기 자본이 대규모로 투입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포주 특성에 따라 공정이 달라지고 수율 편차가 큰 탓에 생산비용이 높고, 공정 불일치나 품질 변동이 발생할 경우 단일 배치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사례도 언급됐다.
안전성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유전자치료의 경우 바이러스 벡터가 환자 게놈 안에 삽입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위치에 들어가 삽입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강한 면역반응을 유발해 중증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세포치료 중 CAR T는 강력한 항종양 효과만큼이나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과 신경독성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부작용 관리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술적 난제 역시 산업 확산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언급됐다. 보고서는 유전물질을 목표 조직에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전신 독성을 줄이는 고효율 전달 시스템 확보, 수만 명 단위 환자를 대상으로도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대규모 제조공정 개발을 대표 과제로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높은 약가와 보험급여 불확실성이 환자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이런 복합적인 변수들을 고려해 2035년을 기준으로 세포유전자치료의 국내 미래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그렸다. 성장확산형 A 시나리오에서는 안전성과 비용 문제가 일정 수준 해소되고, 규제와 보험 제도가 정비되면서 세포유전자치료가 일상 의료의 일부로 자리 잡은 모습을 가정했다. 암과 희귀 유전질환은 물론 당뇨, 고혈압, 알츠하이머 등 만성질환에도 치료 옵션으로 적용되고, 환자 거주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접근성이 개선된 상태다.
부분 성장형 B 시나리오에서는 연구개발과 기술 수준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지만, 실제 환자 체감 치료 확산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상황이 그려졌다. 수도권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고난도 치료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지방과 중소병원 환자는 여전히 치료 접근에 제약을 받는 구조다. 산업 측면에선 핵심 소재와 장비의 85퍼센트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공급망 리스크와 비용 상승에 시달리는 모습이 상정됐다.
침체위기형 C 시나리오는 기술개발 자체가 지연되는 비관적 경로다. 예상치 못한 중대한 부작용 사례가 연달아 발생하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커지면서 사회 전반에 불안과 회의감이 확산된 상황으로 그려졌다. 규제는 강화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해 임상과 인허가 지연이 반복되고,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투자 위축과 상장 실패가 겹치며 침체가 장기화되는 그림이다.
보고서는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전략 축을 제시했다. 우선 병원, 제약사, 장비업체, 스타트업, 규제기관 등 산업 생태계 주체 간 협력을 강화해 임상데이터와 공정 노하우를 공유하는 다층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벡터, 배지, 플라스미드 DNA, 일회용 배양백 등 핵심 원자재와 주요 공정장비의 국산화 없이는 안정적인 산업 성장 구도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정책 부분에서는 국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구축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세포유전자치료 특성을 반영한 임상 설계 기준, 장기 추적조사 요건, 이상반응 관리 체계, 제조공정 변경 시 규제 기준을 사전에 제도화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병원과 기업이 생성하는 방대한 임상·제조 데이터를 표준화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정 최적화와 환자 맞춤형 치료 알고리즘 개발을 가속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세포유전자치료가 비용과 안전성, 기술적 난제 탓에 아직 널리 쓰이는 치료 방식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미래 의료에 필수적인 기반 기술로 평가했다. 이어 세포유전자치료가 바이오 산업과 의료 시스템 혁신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여지가 크다면서도 어떤 시나리오에 수렴할지는 정책 선택과 산업계 투자, 사회적 합의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계와 정책당국이 기술 발전 속도와 더불어 제도와 생태계 전환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2035년 세포유전자치료 산업 지형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