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담장을 넘은 다리와 의사봉을 두드린 손”…우원식, 12·3 비상계엄 1년 앞두고 회고록 내놨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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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충돌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격랑에 휩싸였던 국회와 청와대의 대치가 1년을 앞두고, 당시 국회를 이끌었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자신의 선택을 글로 남겼다. 계엄 발동과 해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과정 전반을 복기하며 한국 정치의 위기와 분수령을 되짚는 시도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30일 국회의장실을 통해 다음 달 1일 회고록 넘고 넘어-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국회의장의 기록을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발간한다고 밝혔다. 책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약 4개월에 걸친 계엄·탄핵 정국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특히 계엄 해제 선포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등 헌정 사상 전례 없는 절차를 국회의장 시각에서 담았다.  

회고록은 비상계엄의 밤,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탄핵의 길, 제2의 비상계엄, 파면의 밤, 역대 최고의 신뢰도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우 의장은 각 장에서 국회 본회의장 안팎의 상황, 여야 간 극한 대치, 계엄 사령부와의 긴장 관계 등을 시간 순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비상계엄 발동 직후 여야 협의 시도와 함께, 계엄 해제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과 헌법기관 간 권한 다툼까지 포괄해 당시 정국의 전개 과정을 기록했다는 취지다.  

 

책 표지는 상징적 장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우 의장이 국회 담장을 넘는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 국회의장 출입이 봉쇄된 가운데, 본회의 진행을 위해 경비선을 뚫고 담장을 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고, 이후 계엄 반대 여론과 맞물리며 정치적 파장을 키웠다. 우 의장은 이 장면을 회고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 의장은 책머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적었다. 그는 “담장을 넘은 다리와 의사봉을 두드린 손은 나의 것이었다”며 “그러나 그 순간의 결단을 가능케 한 힘은 거리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의 의지였다”고 썼다. 형식상 국회의장 개인의 결단이었지만, 실질적 동력은 거리와 일상에서 표현된 시민의 저항과 지지에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 회고록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절차를 둘러싼 국회의 내밀한 고민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탄핵소추안 발의 전 여야 교섭 과정, 국회의장단과 원내대표단의 설득 시도, 일부 의원들의 이탈 우려, 표결 직전까지 이어진 긴박한 정족수 계산 등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심판 과정과 판결 직후 국회의 입장 표명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도 정리했다.  

 

우 의장은 또 계엄 해제 이후를 제2의 비상계엄으로 규정했다. 형식적 계엄은 해제됐지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정국이 다시 급속히 경색됐다는 판단에서다. 책에는 계엄 이후 검찰과 군 수사, 여야의 상호 비난, 지지층 결집과 거리 시위 확대 등 정치·사회 전반의 긴장 상황이 담겼다. 헌정 질서가 파탄 직전까지 몰렸다는 우 의장의 위기의식도 곳곳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의장실 관계자는 회고록 발간 취지에 대해 “국회의장이었던 당사자가 헌정사에 남을 수 있는 중대 사태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렸는지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라며 “정파를 떠나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 향후 헌정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참고 자료로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우 의장의 회고록을 두고 엇갈린 해석이 나올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미 계엄과 탄핵 판단을 둘러싼 정치적 평가가 갈라져 있는 만큼, 국회의장의 기록이 또 다른 정치적 논쟁을 부를 수 있다는 반응이 제기된다. 반면 야권에서는 헌정 위기를 거치며 드러난 권력 남용과 제도 허점을 복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크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1년을 앞두고 계엄 발동의 정당성과 탄핵 절차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확산될 경우, 우 의장의 회고록은 그 중심 자료 중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여야는 계엄 사태 진상 규명과 관련 법제 보완을 놓고도 입장 차를 보여 온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우 의장의 기록이 참고 자료로 인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국이 다시 과거의 위기 국면을 둘러싼 해석 공방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위기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 논의로 이어질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국회는 향후 계엄 요건과 통제 장치, 탄핵 절차의 투명성 제고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회의장의 기록을 참고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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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국회의장#비상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