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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마다 번호를 센다”…제1200회 로또가 비춘 한국인의 작은 기대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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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요일 밤마다 TV 앞에서 번호를 세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한번쯤 꿈꿔보는 대박’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작은 의식이 됐다. 몇 천 원으로 사는 기대감이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 준다.

 

11월 29일 추첨한 제1200회 로또 6/45 당첨번호는 1, 2, 4, 16, 20, 32번이며 보너스 번호는 45번이다. 당첨금은 지급 개시일로부터 1년 동안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날이 휴일이면 다음 영업일까지 기회가 이어진다. 그래서 토요일 밤 번호를 확인한 뒤, 일요일 아침 조용히 판매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전히 많다.

제1200회 로또당첨번호
제1200회 로또당첨번호

로또는 이제 하나의 생활 패턴이 됐다.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회차 당첨번호는 물론 당첨복권 판매점까지 조회할 수 있어, 사람들이 “당첨 명당”을 찾아 나서는 재미도 더해졌다. 평일엔 판매 제한이 거의 없어 출퇴근길 편의점에서 무심코 한 장씩 사는 이들이 많고, 추첨일인 토요일에는 오후 8시부터 일요일 오전 6시까지 판매가 중단된다. 번호를 고르는 손끝에 “이번 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조용한 바람이 깃든다.

 

이런 기대는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제1회부터 제1200회까지 로또 총 판매금액은 84조 7,284억 2,526만원, 같은 기간 지급된 당첨금은 42조 3,642억 1,263만원에 이른다. 20여 년 동안 국민이 로또에 실은 꿈과 희망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수치다.

 

누적 1등 당첨자는 9,999명으로 집계됐다. 2등은 60,489명, 3등은 2,283,804명이었다. 지금까지 지급된 1등 당첨금은 20조 1,808억 5,780만원, 2등은 3조 3,626억 1,390만원, 3등은 3조 3,630억 2,844만원이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뒤엔 당첨 직후 잠을 설쳤을 누군가의 밤과, 아쉬움을 삼켰을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이 겹쳐져 있다.

 

당첨금 규모만 놓고 보면 로또는 여전히 강렬한 유혹이다. 평균 1등 당첨금은 20억 1,828만원이다. 누군가에게는 대출을 모두 갚고도 인생 계획을 다시 짤 수 있는 금액이다. 최고 1등 당첨금은 407억 2,295만원, 최저 1등 당첨금은 4억 593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같은 번호 6개를 맞혔더라도, 어떤 주에는 인생이 통째로 바뀔 만큼의 액수가, 또 어떤 주에는 조금 현실적인 ‘인생 2막 준비자금’ 정도의 액수가 주어진 셈이다.

 

어떤 번호를 고를지도 작은 고민거리다. 1200회차까지 가장 많이 추첨된 번호 6개는 34번(204회), 12번(203회), 27번(202회), 33번(202회), 13번(201회), 17번(199회) 순이다. 이어 3번과 7번, 43번이 각각 197~198회로 뒤를 잇고, 1번은 196회 추첨됐다. 이번 회차 당첨번호에 포함된 1번과 2번, 4번, 16번, 20번, 32번 역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번호들이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는 “자주 나오는 번호만 모으면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하지만 로또는 어디까지나 확률의 게임이다. 통계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특정 번호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자주 나온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해 왔다. 모든 번호가 매주 같은 조건으로 추첨되고, 각 회차가 서로 독립된 사건이라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럭키 넘버’를 만들고, 생일이나 기념일, 휴대전화 뒷자리를 묶어 번호를 고른다. 기능보다 감정, 확률보다 취향이 앞선다.

 

이런 흐름을 심리 전문가들은 ‘소확행의 복권 버전’이라고 부른다. 거액의 당첨보다, 일주일 동안 ‘혹시나’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기대하는 상상이 주는 설렘이 일상을 버티게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번호를 체크하는 짧은 순간, 사람들은 현실의 걱정 대신 만약의 상황을 떠올린다. “당첨되면 회사를 관둘까”, “부모님 빚부터 갚아 드려야지” 같은 상상들이 마음속에 조용히 쌓인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오늘도 기부 완료했다”고 웃어 넘기는 사람, “그래도 한 장은 산다”고 고백하는 사람, “당첨 안 돼도 추첨 방송 보는 재미가 있다”고 표현하는 이들까지, 로또는 이미 토요일 밤의 작은 문화가 됐다.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통해 각자 일주일을 정리하고 다음 주를 준비하는 셈이다.

 

로또 추첨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35분, TV 생방송을 통해 진행된다. 공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거실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어떤 집에서는 가족이 함께 숫자를 외치고, 어떤 집에서는 혼자 조용히 휴대전화 메모장과 비교한다. 화면 속 노란 공과 하얀 숫자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와 체념, 유머와 소소한 의식이 동시에 담겨 있다.

 

당첨 확률을 따져 보면 냉혹한 게임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토요일 저녁 습관처럼 로또를 산다. 누군가에게는 빠듯한 살림 속 작은 낭비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언젠가”를 붙잡게 해 주는 희망의 티켓이다. 실현 가능성보다 상상 가능성을 우선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한 시대다.

 

로또는 거대한 부를 약속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에 가깝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돈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떠올릴지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적는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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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동행복권#행복드림로또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