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개선, 법관 의견 반영돼야”…전국법관대표회의, 여당 사법개혁 법안에 입장 주목
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법원 내부로 번졌다. 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법안에 대해 전국 법관 대표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가 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위헌성 우려가 쏟아진 데 이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유사한 기류를 공식화할지 주목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8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사법제도 개선, 법관 인사 및 평가제도 변경 등을 논의했다. 회의는 대면과 온라인 병행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참여하는 회의기구로,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재판제도 분과위원회가 발의한 사법제도 개선 관련 안건이고, 두 번째는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가 올린 법관 인사·평가제도 변경 관련 안건이다. 두 안건 모두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논의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법원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재판제도 분과위 안건은 총 세 개 항으로 구성됐다. 제1항은 사법제도 개선 과정에서 국민의 기대와 요구뿐 아니라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국민 여론만이 아니라 법관 사회 내부의 전문적 판단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제2항은 제도 개편 논의의 구체 방향을 짚었다. 상고심 제도 개선과 사실심 강화 방안이 동시에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대법관 구성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대법원 구성과 사건 처리 구조 전반을 함께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제3항에는 사법제도 개선을 둘러싼 법관들의 내부 다짐이 포함됐다. 재판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내용으로, 정치권의 개편 논의 속에서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을 가진다.
법관인사제도 분과위가 상정한 의안은 법관평가제도 변경 속도에 대한 우려를 중앙에 놓고 있다. 의안에는 단기적인 정치권 논의나 일시적인 사회 일부 여론에 따라 제도가 성급하게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평가제도 개편이 정치적 환경에 종속돼선 안 된다는 경계로 읽힌다.
해당 의안은 또 법관 인사와 평가제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제도 개편은 충분한 연구와 검토, 폭넓은 집단 의견 수렴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법관 사회 내부 논의를 거친 뒤 단계적으로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와 별개로 현재 국회와 여당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구성,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도입 법안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내란사건 전담 재판부 신설과 특정 범죄 구성요건 신설은 헌법상 권력분립과 형사법 원칙과 맞물려 있어, 법관 사회에서도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이날 상정된 각 안건은 회의에 참석한 법관 대표 과반수가 동의해야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된다. 정족수에 못 미칠 경우 안건은 부결된다. 법관 대표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향후 여당의 사법개혁 드라이브와 법원 내부 대응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5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주관으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에서는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사법개혁 법안에 대해 위헌성이 크다는 강한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법원장들은 재판의 독립성과 권력분립 원칙을 거론하며 신중한 입법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다수석을 점한 여당은 사법개혁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고, 법원 내부에서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 입법 내용과 절차를 둘러싼 우려가 표출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문구와 강도로 입장이 정리될지에 따라 정치권과 사법부 간 긴장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전국법원장회의에 이어 전국법관대표회의까지 비판 기류가 이어질 경우, 사법개혁 법안 심사 방식과 일정 조정 여부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향후 관련 상임위원회 논의를 지속하면서 법원과의 의견 조율에도 나설 계획이고, 법원은 내부 논의를 바탕으로 사법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추가 건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