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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GLP-1 비만치료제 나왔다…한미, 내년 출시로 통합 대사질환 공략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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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한국 제약사의 손에서 상용화 문턱까지 올라왔다. 한미약품이 국산 신약 후보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바탕으로 비만 치료 시장에 본격 진입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주도해온 GLP-1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당뇨, 심혈관, 신장질환을 아우르는 통합 대사질환 관리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주성분으로 한 한미 에페글레나타이드 오토인젝터주에 대해,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 환자용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제품은 일주기 또는 주기적 주사로 체중을 조절하는 GLP-1 계열 주사제이며, 허가가 나면 국산 GLP-1 비만치료제 신약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회사는 내년 국내 출시를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이다. GLP-1은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배출을 늦추며 포만감을 높인다. 약물로 GLP-1 수용체를 자극하면 식욕이 줄고 섭취 칼로리가 감소해 체중이 감소하는 작용기전이다. 한미약품은 자체 플랫폼을 활용해 약효 지속시간을 늘린 장기지속형 제형으로 설계해 투약 편의성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한다.  

 

한미약품이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3상 임상시험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1차 평가지표 모두에서 위약 대비 통계적 우월성을 확보했다. 투약 40주 시점 평균 체중 감소율은 9.75퍼센트로, 위약군의 마이너스 0.95퍼센트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개별 환자에서는 최대 30퍼센트에 이르는 체중 감소 사례도 관찰됐다. 체중을 5퍼센트 이상 줄인 피험자 비율은 79.42퍼센트로, 위약군 14.49퍼센트 대비 현저히 높았다. 회사 측은 기존 GLP-1 제제와 비교해도 이상반응 발생 양상이 양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한미약품은 이번 허가 신청을 에페글레나타이드 가치 극대화를 위한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 전략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단일 비만치료제를 넘어 당뇨 적응증 확장, 디지털융합의약품 개발,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및 일반의약품 패키지 구성 등을 통해, 하나의 통합 비만 및 대사관리 솔루션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적응증 측면에서는 비만에서 2형 당뇨병으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다. 한미약품은 현재 SGLT-2 저해제와 메트포르민 병용요법과의 3상 임상을 진행하며,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하는 전략을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목표 허가 시점은 2028년으로 잡았다. 회사는 이 병용 3상이 혈당 조절 효능뿐 아니라 비만, 심혈관, 신장질환까지 아우르는 통합 대사질환 치료제로 도약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핵심 관문이 될 것으로 본다.  

 

제형 전략도 병행된다. 한미약품은 프리필드시린지와 멀티펜 등 다양한 주사 제형을 개발해 환자와 의료진의 투여 편의성을 높이고 복약 순응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GLP-1 시장에서 주사 빈도와 제형 편의성이 환자 선택의 핵심 변수로 부상한 만큼, 다양한 제형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디지털 기술 접목은 한미약품이 차별화를 노리는 축이다. 회사는 에페글레나타이드와 모바일 앱, 웨어러블 기기 등 디지털 의료기기를 결합한 디지털융합의약품 개발에 착수했다. 디지털융합의약품은 약물 투여 정보와 활동량, 식사 패턴, 심박수 등 생활 데이터를 연동해 맞춤형 운동 처방, 생활습관 교정, 체중 감소 보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미약품은 내년 1분기 디지털융합의약품 임상시험계획을 규제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이미 대형 제약사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비만과 2형 당뇨, 심혈관 위험 감소까지 확대된 적응증을 기반으로 매출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GLP-1 신약이 등장하면 국내 환자의 약제 선택권이 넓어지고, 보험 약가 및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 제휴나 수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도 형성되고 있다.  

 

다만 디지털융합의약품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규제와 제도 정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 치료 기능을 가진 소프트웨어는 의료기기 또는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로 분류돼 별도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고, 데이터 수집과 활용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비만을 질병으로 본 보험급여 체계, 디지털 치료 연계 서비스에 대한 평가 기준 등도 상용화 속도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한미약품 신제품개발본부장 김나영 전무는 내년 국내 출시를 목표로 허가 심사 대응에 주력하겠다고 밝히면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국내 개발 최초 GLP-1 신약으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국산 GLP-1 비만치료제가 실제 시장에 안착해 통합 대사질환 관리 솔루션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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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에페글레나타이드#gl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