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특검의 분열 시도 응하지 않겠다"…한동훈, 참고인 출석 요구 거부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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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민중기 특별검사팀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정면 충돌했다. 특검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관련 의혹 규명을 위해 참고인 출석을 요구하자, 한 전 대표는 정치 편향과 분열 시도를 거론하며 강력 반발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 박노수 특별검사보는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인 3일 한동훈 전 대표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박 특별검사보는 어제 국회의원 공천과 관련해 한 전 대표에 대해 10일 오후 2시 참고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하는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에 따르면 수사팀은 지난 8월부터 한 전 대표 측과 조사 일정 협의를 시도했지만, 전화와 문자 메시지, 우편을 통해 여러 차례 연락했음에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 특검은 출석요구서 발송이 사실상 마지막 공식 요청 절차였다고 부연했다.

 

특검이 주목하는 핵심 대목은 한 전 대표의 과거 발언이다. 박 특별검사보는 한 전 대표가 언론 등에서 작년 총선 무렵 김상민 전 부장검사를 공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하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갈등이 생겼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특검 수사 대상인 윤 전 대통령 등의 공천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박 특별검사보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로서 수행한 공천 관련 업무와 언급 내용에 대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 협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 당시 공천권을 행사한 당 대표의 진술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동훈 전 대표는 특검의 요청이 알려진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총선 당시 국민의힘을 이끈 사람으로서 총선 경쟁 상대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정한 민중기 특검의 분열 시도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 대표는 또 국민의힘은 김영선 전 의원과 김상민 전 검사를 모두 경선 자격조차 주지 않고 컷오프 처리했다며, 절차에 따라 단호하게 컷오프한 공천에 대해 총선 경쟁 상대당이 단독으로 정한 정치적 편향 특검에게 더 보태줄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천 과정이 당헌·당규에 따른 정당한 절차였고, 이를 문제 삼는 특검의 수사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는 특검팀의 수사 방향을 정면 겨냥하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특검팀이 통일교 집단 입당·후원 관련 정당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국민의힘만 기소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등 편향성을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중기 특검이 특검팀 수사 대상 주식과 관련한 미공개 정보 이용 거래 의혹을 받는 만큼 이해충돌이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소환 통보 절차를 둘러싼 공방도 벌어졌다. 한 전 대표는 특검으로부터 참고인 소환 통보를 받은 바 없으나 특검이 저를 10일 소환한다고 언론플레이 했다며, 이명현 특별검사와 조은석 특별검사가 자신을 공격하려다 실패하자 이제는 민중기 특검이 나섰다고 말했다. 특검의 연속 수사가 자신을 겨냥한 정치 공세라는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법적 지위 측면에서 한 전 대표는 현재 참고인 신분이어서 강제 구인 대상이 아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와 참고인 모두에게 출석을 요구할 수 있지만, 피의자는 통상 세 차례가량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할 경우 영장을 청구해 신병 확보에 나선다. 반면 참고인에 대한 출석 요구는 재량에 따른 임의 출석 요구여서 강제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한 전 대표가 계속 불출석을 유지하면 특검팀은 한 전 대표 조사 없이 피의자들을 기소한 뒤 재판 단계에서 증인 신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부가 증인 채택을 결정하면 법원이 소환장을 발부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법정 출석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나 구인 등 제재가 가능하다.

 

특검 수사의 직접 대상은 김건희 여사와 김상민 전 부장검사 간 공천 청탁 의혹이다. 박 특별검사보가 언급한 공천 개입 의혹은 김 전 부장검사가 김건희 여사 측에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건네며 지난해 4·10 총선 공천 등을 청탁했다는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당 시기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로서 공천권을 행사한 시점과 겹친다.

 

김건희 여사는 총선을 앞두고 창원 의창구가 지역구인 김영선 전 의원 측에 의창구에서 김상민 검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취지로 압박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부장검사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탈락해 컷오프됐고, 넉 달 뒤인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 법률특보에 임명돼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특검팀은 김 전 부장검사를 지난 10월 2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수수·요구·약속한 경우 성립하는 구조여서, 특검은 당시 공직에 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민간인인 김 여사의 공범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민중기 특검팀은 같은 날 윤석열 전 대통령 관저 이전 특혜 의혹과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 등 다른 주요 사안에서도 수사를 확대했다. 특별검사팀은 이날 오전 대통령 관저 이전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인테리어 업체 21그램 공동대표 이 모 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설명했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종합건설업 면허가 없는 21그램이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 및 증축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21그램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가 주최한 전시회를 후원하고 코바나 사무실 설계·시공을 맡았던 업체로 알려져 있다. 특검팀은 이 업체가 김 여사의 영향력 아래 관저 공사를 수주했는지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특검은 또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과장 김 모 씨를 전날에 이어 피의자 신분으로 재차 소환해 조사했다.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특검팀은 김 과장이 2022년 3월께 양평고속도로 사업 실무진에게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포함된 대안 노선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선 변경 과정에서 대통령 배우자 일가의 이해가 반영됐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민중기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공천 청탁, 관저 이전, 양평고속도로 등 의혹 전반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참고인 출석 요구가 거부되면서 수사 절차는 법정 증인 신청 등 재판 단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은 특검의 행보와 한 전 대표의 맞대응을 놓고 격돌하고 있으며, 국회는 향후 특검 연장 여부와 관련 입법을 놓고 추가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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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민중기특별검사#윤석열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