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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체계 140년 조명했다…제중원 심포지엄, 공공의료 재정의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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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병원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제중원이 한국 의료체계 변화를 되짚는 자리가 마련됐다. 의료공급 체계와 인력 양성, 지방 의료 모델, 무의촌 정책 등 지난 140년 의료정책의 궤적을 통해, 고령화와 의료기술 고도화가 맞물린 현재의 공공의료 과제를 재정리하는 시도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논의가 디지털 헬스케어, 필수의료 강화 정책과 연결되며 향후 보건의료 구조 개편 논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은 5일 제일제당홀에서 제중원 1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 의료체계가 형성되고 발전해 온 과정을 주요 제도 변화 중심으로 조명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의료자원의 지역 불균형, 의료인 관리 체계 확립, 지방 의료 모델 구축, 전공의 제도 정착, 무의촌 해소 정책 등 굵직한 이슈들이 시간순으로 정리되며 한국 의료의 구조 변화를 입체적으로 짚었다.

첫 발표에서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는 근대 의학교육기관 6곳의 졸업생 수와 일본 유학 출신 의사, 의사시험 합격자 통계를 제시하며 공급 기반을 분석했다. 이어 관공립병원과 선교병원의 지역 분포와 경쟁 구도, 개원의와 공의의 역할 차이를 비교해 의료공급 체계가 초기부터 공공성과 시장성이 혼재된 구조였다고 설명하며 논의를 열었다.

 

김진혁 전임연구원은 미군정기 의료자원의 지역 편중 문제를 다뤘다. 당시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의료기관은 경성에 집중돼 지방 주민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해방 직후 일본인 의사가 귀환하면서 인력 공백이 심화돼, 지역 간 불균형이 구조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이후 의료보험 도입, 지방 의료 확충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정책 변수로 작용했다고 부연했다.

 

박지영 전북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해방 이후 의료인 관리 체계 재편과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과정을 짚었다. 정부는 전쟁과 재건 국면에서 의료인력 확충과 배치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의료계는 전문성 보장과 자격 관리 강화를 요구했다. 박 교수는 국민의료법이 양측의 상반된 이해를 조정하면서도, 국가가 의사 인력과 의료기관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재구 경희대 사학과 박사는 세계보건기구가 1960년대 충청남도에서 진행한 모범보건도 조성 사업을 통해 지방 의료체계의 실험을 되돌아봤다. 보건소와 보건지소, 도립병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 예방 중심 보건사업과 의료인력 훈련을 병행하는 구조를 구축했고, 이 모델이 이후 전국 확산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강 박사는 이러한 지역 중심 모델이 오늘날 공공의료 거점병원, 만성질환 관리,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1차의료 강화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해석했다.

 

원주영 가톨릭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강사는 전공의 제도의 도입과 변화를 주제로 한국 의료의 전문화 과정을 설명했다. 1950년대 혼합형으로 출발한 전문의 제도는 1960년대 자격시험 도입을 거쳐 제도적 골격이 갖춰졌다. 1971년 수련의 파업은 수련 환경과 권리 보장을 둘러싼 갈등을 표면화했고, 이후 제도 개선과 함께 전문과목 수는 1952년 10개에서 1996년 26개로 확대됐다. 원 강사는 이 과정이 중증·고난도 치료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지만,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과 필수과 기피라는 새로운 구조적 문제도 남겼다고 짚었다.

 

박승만 가톨릭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가 추진한 무의촌 해소 계획을 재평가했다. 당시 정부는 보건소와 보건지소 확충, 도립병원 기능 강화 등으로 최소한의 의료접근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재정 여건과 정책 우선순위 한계로 완전한 성과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그럼에도 이 시기의 정책 시도가 현재 농어촌 필수의료, 응급의료 체계 강화, 원격의료 논의의 출발선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에서 문진수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서울대병원의 공공의료 역할과 향후 과제를 정리했다. 문 부원장은 의료 접근성 향상과 필수의료 제공, 지역 간 격차 완화를 위해 추진 중인 공공의료 활동을 소개하면서, 고령화, 인구 소멸 지역 증가, 첨단 의료기술 도입 가속 등 환경 변화에 맞춘 공공의료 체계 재설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지방 거점병원, 보건소를 잇는 연계 구조 속에서 교육과 연구, ICT 기반 진료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김주성 의학역사문화원 원장은 제중원을 기점으로 한 지난 140년의 의료사를 돌아보며, 한국 의료공급 체계가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의 구조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정리된 역사적 경험이 향후 의료정책과 공공의료 방향을 설계하는 데 참고 축적 데이터로 활용되길 바란다면서, 의료기술 발전과 제도 설계가 함께 논의돼야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논의를 계기로 공공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의료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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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서울대병원의학역사문화원#공공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