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뇌파까지 잡는다"…이대목동, 난치성 뇌전증 정밀수술 확대
수술용 로봇을 활용한 정밀 뇌전증 수술이 국내에서 치료 옵션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뇌전증 정밀치료팀이 신경계 치료 로봇 카이메로를 이용해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두개골을 넓게 여는 기존 방식과 달리 2~3밀리미터 크기의 미세 구멍을 통해 양측 뇌 깊은 부위까지 전극을 삽입하는 기술로, 침습성과 합병증 위험을 낮추면서 발작 유발 부위를 더 정확하게 찾을 수 있어 향후 난치성 뇌전증 치료 패러다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아직 일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만 로봇 기반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이 도입된 단계라, 이번 사례가 고난도 신경외과 수술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보여주는 분기점으로도 주목된다.
이대목동병원은 최근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신경계 치료 로봇 카이메로 시스템을 활용해 두 차례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을 마쳤다고 29일 밝혔다. 로봇을 활용한 이 수술은 국내 병원 가운데 일곱 번째로 시행된 것이다. 수술을 담당한 뇌전증 정밀치료팀은 신경과 이향운 교수, 신경과 황성은 교수, 신경외과 김영구 교수로 구성됐다.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은 뇌전증 발작이 실제로 시작되는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고난도 정밀 수술이다. 기존에는 두개골을 넓게 절개한 뒤 뇌 표면에 그리드 형태의 전극을 부착해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됐다. 이 방법은 개두 범위가 크고 침습성이 높아 환자 부담이 컸고, 양측 뇌 깊은 구조까지 동시에 정밀하게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카이메로 로봇을 활용한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은 이러한 한계를 줄였다. 의료진은 2~3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 여러 개를 통해 양측 뇌의 깊숙한 부위까지 길이 10센티미터가 넘는 전극을 약 15개 삽입한다. 로봇 시스템이 뇌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극 삽입 궤적을 정밀하게 안내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입체 정위 수술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기존 개두 수술보다 절개 범위가 작고 수술 시간이 짧으며, 뇌출혈 등 합병증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피질 표면뿐 아니라 피질 하부 구조를 포함한 3차원 공간에서 발작 유발 병소를 더 세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번 수술의 대표 사례로 소개된 환자 곽 모 씨는 35년 넘게 난치성 뇌전증을 앓아온 52세 남성이다. 반복적인 발작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였고 오랜 기간 약물치료를 이어왔지만 증상 호전이 없어 수술을 선택했다. 카이메로를 이용한 입체 정위 뇌파 수술 후 심한 통증이나 어지럼증 없이 뇌전증 유발 병소 위치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었고, 이후 병소 절제술까지 연이어 성공해 현재는 발작 없이 일상으로 복귀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 환자는 지난 20일 기준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은 고도의 해부학 지식과 술기가 요구되는 영역으로 꼽힌다. 환자마다 뇌 구조와 발작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수술 전 영상검사와 뇌파검사 결과를 합쳐 발작이 시작될 것으로 의심되는 지점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특히 전극을 어느 경로로, 어느 깊이까지 삽입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수술 성패를 좌우한다. 로봇 시스템은 이러한 계획을 좌표화해 실제 환자 두개골 위에서 정밀하게 구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병원 측은 이번 결과에 대해 신경계 미세 수술에 능숙한 의료진의 경험과 카이메로 시스템이 결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수술 로봇이 제공하는 정밀한 위치 지정과 안정적 고정 기능 덕분에 전극 삽입 과정의 오차를 줄이고, 의료진이 뇌파 분석과 치료 전략 수립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의료진은 수술 후 일정 기간 환자를 관찰하며 수집된 뇌파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상 뇌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병소를 제거했다.
국내에서 로봇 기반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을 시행하는 기관은 아직 많지 않다. 고가의 로봇 장비와 뇌전증 전담팀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미국 일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SEEG와 로봇 시스템이 표준화 단계에 진입한 곳도 있으나, 국내는 아직 도입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이번 이대목동병원 사례는 상급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정밀 뇌전증 수술 역량과 로봇 인프라가 결합한 대표적인 모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의료 접근성과 비용 문제가 과제로 남는다.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은 난치성 환자에게 사실상 마지막 치료 옵션 가운데 하나지만, 수술과 전후 모니터링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김영구 교수는 뇌전증 환자 상당수가 장기 투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술을 원하면서도 비용을 이유로 치료를 미루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난치성 뇌전증을 중증 만성질환으로 관리하는 건강보험 체계와 연계한 지원, 첨단 수술 장비에 대한 공적 투자 확대 등이 향후 논의 지점으로 거론된다.
이향운 교수는 이번 로봇 기반 입체 정위 뇌파 수술이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일상 복귀의 통로를 넓혀줄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수술적 치료 대상을 적극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로봇 수술과 정밀 영상·뇌파 분석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향후 뇌전증뿐 아니라 뇌종양, 운동장애 등 다른 신경계 질환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점쳐보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로봇 기반 뇌 수술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지원이 어느 수준까지 따라갈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