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배전망 국민펀드로 신속히 깔자”…이재명, 한전 재정난 속 민간투자 카드 제시
송배전망 투자 방식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전력공사가 정면으로 마주섰다.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둘러싼 해법 논쟁 속에서 대통령이 국민펀드라는 민간 자금 동원 카드를 꺼내 들며 정치권 논의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 자리에서 송배전망 확충 재원 마련과 관련해 국민참여형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에게 송배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정 규모를 질의한 뒤, 국민 투자 방식 도입을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김동철 사장이 2038년까지 총 113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을 거론하며 기존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한전 입장에서 조달할 길이 없잖나. 100조원의 빚을 또 내기는 마땅치 않을 것”이라고 말해, 공기업 부채 확대만으로는 송배전망 확충이 어렵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곧바로 대안으로 국민펀드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펀드를 만들어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하고 국민에게 투자 기회도 드리고 대대적으로 신속히 까는 게 어떠냐는 게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전 돈으로 하기는 힘든데, 어차피 송배전망을 한전에서 쓸 수밖에 없고, 요금은 정부가 손해 보지 않는 수준으로 정할 것”이라며 “이런 안전한 투자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강조했다.
발언의 골자는 안정적 요금 수입이 뒷받침되는 송배전망을 인프라 자산으로 보고, 수익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국민이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다시 말해 공기업 단독 부담이 아니라, 수익형 인프라 구조를 통해 민간 자금을 대규모로 끌어들이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당시 “국민은 투자할 데가 없어서 미국까지 가는데, 민간 자금을 모아 대규모 송전시설을 건설하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느냐”며 민간 투자 허용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내 투자처 부족으로 해외 투자로 쏠리는 자금을 송배전망 등 국가 기간 인프라로 유도하자는 제안이다.
정치권에선 향후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당과 정부는 한전 재무 구조 악화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송배전망 투자 수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펀드 방식이 공공성 유지와 투자자 보호를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지 설계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공공 인프라에 대한 수익 보장 구조가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예고되고 있다. 인프라 펀드는 장기 안정 수익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수익률 보장을 위해 전기요금 체계에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반영할지, 손실 발생 시 정부와 투자자의 부담 분담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에 한전의 추가 부채 없이도 대규모 설비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재무 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송배전망 확충 방향과 재원 조달 방식을 놓고 관계 부처와 한국전력, 금융권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회 역시 전기요금 체계와 공공 인프라 민간 투자 관련 제도 정비 필요성이 부각된 만큼, 다음 회기에서 관련 입법과 정부안 검토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