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유래 칸나비디올 여드름 억제 효과…피지부터 흉터까지 겨냥
대마 유래 비정신성 성분 칸나비디올이 여드름의 발생부터 흉터 형성에 이르는 핵심 기전 여러 단계에 동시에 관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항염과 피지억제 효과가 알려져 온 칸나비디올이 실제 세포 수준에서 피지 생성, 염증 반응, 과각질화, 흉터 관련 피부 구성 단백질까지 포괄적으로 조절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대마 성분 기반 국소 도포형 여드름 치료제 개발 경쟁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데이터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서울대병원은 18일 피부과 서대헌 교수 연구팀이 칸나비디올이 여드름의 주요 발생 과정에 관여하는 세포 반응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연구에는 윤지영 연구원과 이준효 군의관이 참여했다. 이번 결과는 대마 성분 의료목적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한 칸나비디올 안전성·유효성 실증 사업의 한 축으로 수행됐으며, 국제학술지 피부과학 연구 아카이브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여드름 병인과 흉터에 각각 관여하는 세포 3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설계했다. 피지 분비를 담당하는 피지세포 SEB-1, 각질층 형성과 관련된 각질형성세포 HaCaT, 피부 진피의 재생과 탄력을 담당하는 섬유아세포에 칸나비디올을 농도별로 처리해 세포 반응 변화를 분석했다. 농도 범위는 0에서 20마이크로몰까지 설정했고, 처리 후 24시간에서 72시간 사이 변화를 추적했다.
여드름은 모낭 입구에 각질이 축적되고 피지가 과도하게 분비되며, 여기에 큐티박테리움 아크네스가 관여해 염증이 악화되는 복합 질환이다. 일부 환자에서는 염증이 피부 깊숙이 파고들면서 흉터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의 약물은 피지억제제, 항생제, 레티노이드 등 특정 단계만 겨냥하는 경우가 많아 복합 병인 전체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타깃 발굴 필요성이 지적돼 왔다.
연구팀에 따르면 칸나비디올은 먼저 피지세포 활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농도가 올라갈수록 피지세포 사멸이 증가했고, 특히 고농도에서 세포 사멸 영역이 뚜렷하게 확장됐다. 이는 피지 분비를 줄이면서 과도한 피지세포 증식을 차단하는 이중 효과를 노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포 내 지질 합성 경로를 들여다보면 칸나비디올은 피지 합성을 촉진하는 단백질 발현을 눈에 띄게 떨어뜨렸다. 피지 합성 전사를 조절하는 SREBP-1과 지방세포 분화·지질 축적에 관여하는 핵수용체 PPAR감마 발현이 감소한 것이다. 동시에 에너지 대사 조절 인자인 AMPK 활성은 증가했다. AMPK 활성화는 세포가 에너지 보존 모드로 전환되면서 지질 합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신호다. 실제 계량 결과에서도 칸나비디올 농도가 높을수록 피지세포 내 피지량이 줄어드는 패턴이 관찰됐다.
염증 억제 효과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큐티박테리움 아크네스를 이용해 피지세포에 염증을 유도한 뒤 칸나비디올을 처리해 반응을 비교했다. 그 결과 대표적 염증 사이토카인인 CXCL8, 인터루킨 1알파, 인터루킨 1베타 발현이 유의하게 감소했다. CXCL8은 염증 부위로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신호물질이고 인터루킨 1 계열은 염증 반응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들의 발현 감소는 여드름 병변의 붉어짐과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기전으로 여겨진다.
여드름 초기 병변과 밀접하게 연관된 과각질화 지표도 변화를 보였다. 모낭 입구 각질 축적과 관련된 케라틴 16 발현이 칸나비디올 처리 후 감소한 것이다. 케라틴 16은 피부 자극이나 손상 시 증가해 각질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단백질로, 여드름 초기 콤비도 형성 과정에 관여한다. 연구팀은 칸나비디올이 케라틴 16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모낭 입구 각질 마개 형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여드름 이후 남는 흉터 단계에서도 칸나비디올의 긍정적 효과가 관찰됐다. 섬유아세포 실험에서 칸나비디올 처리 세포들은 콜라겐 1형과 3형, 엘라스틴 발현이 증가했다. 콜라겐 1형과 3형은 진피층 구조를 이루는 대표적인 섬유 단백질이고, 엘라스틴은 피부 탄력을 부여하는 구성 요소다. 여드름 흉터는 콜라겐 재생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질 때 움푹 패인 흔적으로 남는데, 칸나비디올이 이들 단백질 발현을 촉진했다는 점은 흉터 회복 과정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서대헌 교수는 칸나비디올이 피지 생성, 염증 반응, 과각질화, 피부 재생 인자를 동시에 조절한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드름뿐 아니라 흉터 단계까지 겨냥하는 국소 도포형 제제 개발을 염두에 두고 후속 연구를 기획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확보됐다고 평가했다.
칸나비디올은 대마 식물에서 추출되지만 정신 활성 효과가 없어 의료 및 연구용으로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는 물질이다. 기존에는 주로 난치성 간질, 통증, 불안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나, 최근 들어 항염, 항산화, 피지억제 등 피부과 영역에서의 가능성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다만 여드름 발생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아 실제 제품화 전략 수립에 필요한 근거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글로벌 화장품·의약품 업계에서는 이미 칸나비디올을 함유한 스킨케어 제품과 의약외품 개발 경쟁이 진행 중이다. 유럽과 북미 업체들은 피지억제와 진정 효과를 내세운 칸나비디올 화장품을 출시하며 시장을 넓히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대마 성분에 대한 약물 오남용 우려와 법적 규제 부담으로 의료 목적 개발이 더 엄격한 관리 아래에서 진행되는 구조다.
이번 연구가 대마 성분 의료목적 제품 개발 실증 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됐다는 점은 정책적 의미도 남긴다. 규제기관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초·전임상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세포 수준 작용 기전이 정량적으로 제시된 연구는 허가 심사 기준을 설계하는 데도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에 실제 인체 도포 시 전신 흡수량, 장기 노출에 따른 안전성, 다른 여드름 치료제와의 병용 전략 등을 다루는 임상 연구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칸나비디올 기반 여드름 치료제가 상용 단계에 도달할 경우 기존 항생제·레티노이드 중심 치료 전략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본다. 항생제 내성 우려와 전신 부작용 부담을 줄이면서 피지, 염증, 각질, 흉터를 동시에 겨냥하는 다기전(topical multi-target) 접근법이 가능해질 수 있어서다. 다만 실제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의 효과 크기와 안전 프로파일, 장기 사용 시 피부장벽에 미치는 영향 등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병존한다.
연구팀은 향후 여드름과 여드름 흉터를 동시에 겨냥하는 국소 제형 개발을 목표로 in vivo 동물모델과 초기 임상 연구 설계를 모색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바이오·제약·코스메슈티컬 기업 간 공동 개발과 기술이전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대마 성분을 둘러싼 규제와 안전성 논의를 병행하면서, 피부질환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더 촘촘히 쌓는 작업이 향후 시장 형성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칸나비디올 기반 기술이 실제 의료현장과 소비자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