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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시술 교육 확산"…한의사·의사 충돌로 의료안전 논쟁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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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초음파 등 의료기기의 사용 범위를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 간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한의사 단체가 고출력 레이저와 IPL, 박피 장비 등을 활용한 침습적 피부 시술 교육을 진행하면서 의료계에서는 환자 안전과 의료체계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의료 AI나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가 빠르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어떤 직역이 어느 수준까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도 정비가 향후 의료 기술 산업의 성장 속도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8일 성명을 통해 일부 한의사 단체가 고출력 레이저 및 광선치료 장비, 박피 장비 등을 활용한 침습적 시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침습적 레이저 시술을 고도의 전문성과 안전장비가 요구되는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적절한 자격과 수련 체계 없이 교육하거나 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국민 생명과 건강, 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이저 의료기기는 특정 파장의 빛 에너지를 피부나 혈관 조직에 조사해 열 효과나 광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장비다. 색소 병변 치료, 혈관 병변 치료, 제모, 박피 등 미용·피부과 영역에서 널리 활용된다. 서울시의사회는 특히 고출력 장비가 피부조직에 강한 열적·광학적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화상과 반흔, 감염, 색소 이상, 시력 손상 등 부작용 위험이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도 레이저 시술 부작용은 전문의가 시행한 경우에도 발생해왔기 때문에, 해부학과 생리학, 병리학 등을 기반으로 한 충분한 교육을 거치지 않은 인력이 시술을 확대할 경우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의료계는 이러한 침습적 시술을 의과대학 6년 과정과 합법적인 전공의 수련을 통해 체계적인 의학 교육을 이수한 의사만이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비의료인이나, 해당 수련을 받지 않은 직역이 동일한 시술을 대량으로 교육하고 실제 시술로 이어질 경우, 국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특히 최근 학술행사에서 프랙티스 중심의 핸즈온 실습 교육까지 진행된 점을 문제 삼으며, 현장에서 무면허에 가까운 침습 시술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쟁점의 배경에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한의계가 저출력 레이저나 초음파 기기 사용 범위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의료계의 불만이 깔려 있다. 한의사 측은 한방 피부과 영역과 연계해 초음파·고주파·저출력 레이저를 피부 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법령상 허용된다고 해석하는 반면, 의사단체는 해당 판결이 금지 행위 여부와 필요 전문성, 한의학적 원리와의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보라고 한 취지일 뿐, 고위험 침습 시술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 사례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의사 A씨는 리도카인 성분 국소마취제를 환자 피부에 도포한 뒤 피부·미용 의료기기로 시술을 진행해 보건범죄 단속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사용된 마취제가 일반의약품이고, 일반인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해 사용할 수 있어 이러한 행위만으로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초음파와 고주파 레이저를 한의학적 피부 치료에 쓰는 부분에 대해서도, 현행 의료법이 한의학과 전공 과목 중 한방 피부과를 독자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고, 한의사도 수술과 수혈, 전신마취 등 침습적 치료를 전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의사회는 이 판결이 의료기기 사용을 전면 허용한 것이 아니라, 개별 행위의 위험도와 전문성 요구 수준을 기준으로 위법 여부를 따지라는 취지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고출력 레이저나 박피 장비 등을 이용한 침습 시술을 합법화하는 논리는 법률 취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레이저 출력 수준, 조사 시간, 피부 타입, 병변 깊이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시술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의료분쟁도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법령과 행정해석을 근거로 정면 반박에 나섰다. 협회는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에서 한의사의 레이저, 고주파, 초음파 및 단순 자동진단 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레이저수술기를 한방행위 관련 장비로 분류해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행 의료법과 하위 규정 어디에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직역 자체를 이유로 사용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해석 차이는 의료기기의 기술 발전 속도와 규제 체계의 괴리에서도 비롯된다. 레이저와 고주파, 초음파 장비는 하드웨어 성능과 소프트웨어 제어기술의 고도화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미용·피부과 장비에서 시작된 기술이 통증 치료, 재활, 피부재생 등 다양한 적응증으로 확장되면서, 어느 직역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더 복잡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피부과와 미용의학, 비침습 레이저 치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각국은 직역별 교육·자격 요건을 엄격히 구분하는 추세다.

 

서울시의사회는 정부와 보건당국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침습적 레이저 시술 범위와 안전기준을 명문화하고, 무면허 위험 시술로 이어질 수 있는 교육기관과 관련 세미나에 대한 실태조사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고출력 의료기기 사용 기준을 법률과 시행규칙에 반영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레이저 의료기기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산업계 입장에서도 명확한 규정과 인증 기준이 마련돼야 장비 개발과 시장 진입 전략을 세울 수 있어, 규제 공백 장기화는 제조사와 병의원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산하 단체에 한의사 대상 연수강좌와 한의대 출강 금지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해 조직적인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의료계는 한의사의 엑스레이와 초음파, 레이저 등 의료기기 사용이 확대될 경우, 향후 AI 진단보조 시스템이나 로봇 수술 보조 장비 등 고난도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로 논쟁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의계는 반대로 한의학 기반의 치료법과 첨단 의료기기 융합이 환자 선택권을 넓히고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술 자체의 허용 여부보다, 장비 성능과 시술 위험도에 따른 단계별 자격 기준, 교육 이수 요건, 책임 범위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산업계는 레이저와 초음파를 포함한 의료기기와 디지털 헬스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는 만큼, 직역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세분화된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와 한의계, 정부가 합의 가능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와 산업 구조 전환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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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사회#한의사#레이저의료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