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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명처방 두고 의약계 갈등 재점화…식약처, 근거 기반 안전성 강조

김태훈 기자
입력

성분명 처방 도입을 둘러싼 의약계 논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코로나19 유행 당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부족 사태에서 동일 성분 복제약 처방을 의료계에 요청했던 사례를 상기시키며, 성분명 기반 처방의 필요성을 공개 발언으로 강조하면서다. 업계에서는 의약품 공급 불안정과 약국 이른바 뺑뺑이 문제를 줄일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의료계의 안전성 우려를 어떻게 제도 설계에 반영할지가 향후 정책 추진의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최근 발언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당시 타이레놀 품귀 현상을 언급했다. 당시 대표적인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였던 타이레놀이 일부 지역에서 부족해지자, 식약처가 의료계에 동일 성분을 가진 다른 품목을 대신 처방해 달라고 요청했던 경험을 예로 든 것이다. 오 처장은 그 과정에서 의료계가 상당 부분 협조했다고 평가하며, 동일 성분 의약품 간 대체 사용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정부 요청에 따라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을 기준으로 한 동일 제제 처방을 회원들에게 당부했다. 대한약사회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가 70여 개에 달한다는 점을 안내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하며 복제약 활용을 독려했다. 특정 브랜드 의존도가 높은 해열진통제 수요 구조를 완화해 공급 병목을 완충하는 방식이었다.

 

성분명 처방은 처방전 상단에 제품명이 아닌 유효성분명을 기재하고, 실제 조제 단계에서 동일 성분·동일 함량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의료현장에서는 제네릭, 즉 복제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과학적 기준에 따라 인정할 것인지, 브랜드 중심 처방 관행을 유지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있다. 특히 약국에서의 대체조제 권한과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따라 환자의 약 선택 구조가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반복되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과 그에 따른 약국 뺑뺑이 문제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성분명 처방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단일 품목 품절 시 동일 성분 다른 품목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감염병 유행이나 원료 의존도가 높은 특수 의약품에서 공급망 충격에 대응할 수단으로 성분명 중심 처방 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의료단체는 성분명 처방 확대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성분이라도 약동학적 특성, 즉 체내 흡수와 분포, 대사, 배설 양상이 제제마다 다르고, 환자 개개인의 반응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러 제제 중에서 어느 제품이 적합한지는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판단해야 하며, 의학적 평가 없이 약국 단계에서 임의 대체조제가 이뤄질 경우 치료 실패나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식약처는 이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양새다. 배석한 김상봉 의약품안전국장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검증 체계라고 강조하며, 이 표준화된 방법을 통해 동등성이 입증된 제네릭만을 허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은 원개발약과 복제약의 혈중 농도 곡선 등을 비교해 치료 효과가 통계적으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다. 김 국장은 관념이 아닌 증거를 바탕으로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재차 언급하며, 제네릭 품질 관리에 대한 신뢰를 요청했다.

 

이번 논쟁은 궁극적으로 규제과학에 기반한 의약품 평가 체계를 의료현장과 환자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의료기관과 약국 간 역할 분담, 환자의 선택권, 제약사의 브랜드 전략이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고가 항암제 등 고난도 바이오 의약품 영역으로 논의가 확장될 경우, 복잡한 임상 자료와 실사용 데이터에 기반한 추가 평가 기준이 필요해질 가능성도 있다.

 

오 처장은 유전자변형생물 완전 표시제와 관련해서도 규제 방향을 언급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은 GMO 완전 표시제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설계됐다. 다만 실제 시행 시점과 품목 범위, 표시 방식은 향후 하위 규정에서 구체화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식약처는 GMO 완전 표시제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산업계, 식품공학 분야 과학자, 소비자 단체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식품 제조업계는 표시 의무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과 공급망 재편을 우려하는 반면, 소비자 측은 원료 단계부터 완제품까지 투명한 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유전자 편집 신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GMO, 이른바 뉴 플랜트 브리딩 기법 적용 작물에 대한 표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심플로트사가 개발한 살아있는 유전자변형생물 감자에 대한 안전성 심사도 진행 중이다. 오 처장은 LMO 감자 심사를 규제과학 관점에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LMO는 재배와 번식이 가능한 유전자변형 작물을 의미하며, 환경 방출 시 생태계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국내 도입 여부는 국제 기준, 환경 영향 평가 결과, 소비자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산업 측면에서 식약처는 CDMO 규제 지원 특별법 제정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오 처장은 유임 이후 약 반년 동안 신속한 식의약 50대 과제 선정, CDMO 규제 지원 특별법 제정,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상설 가공가공가공가채료 분과위원회 의장국 선출을 3대 성과로 꼽았다. 특히 CDMO 분야에서 수출 지원 법률과 인증제 등 구체적인 지원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바이오 산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관련 특별법 통과는 국내 위탁개발생산 기업의 글로벌 진출 규제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코덱스 가공가채료 분과위원회 의장국 수임은 K 푸드 수출 전략과도 연결된다. 오 처장은 이 분과에서 김치, 고추장, 인삼 등 한국 대표 식품 관련 국제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김치 재료인 배추의 코덱스 명칭에 기존 차이니즈 캐비지와 함께 김치 캐비지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상설위원회 의장국이 된 것은 식약처 설립 이후 처음으로, 향후 한국 식품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자국에 유리한 국제 규격을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AI 기반 의료기기와 디지털 의료 제품의 사이버보안이 내년 식약처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 처장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정보 유출 사례를 언급하며, 의료 데이터와 연결된 디지털 제품에서 정보보안 중요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식약처는 내년에 사이버보안 가이드라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해 업계에 제공하고, 의료 AI와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기기 등이 이를 준수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AI 기반 의료기기는 환자 진단과 치료 의사결정을 직접 지원한다는 점에서, 알고리즘의 정확도뿐 아니라 업데이트 과정, 네트워크 연동 보안, 데이터 무결성까지 포함한 전주기 관리가 요구된다. 특히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과 병원 전자의무기록 연동이 확산되면서, 한 곳의 보안 취약점이 전체 의료 생태계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디지털 치료제와 원격 모니터링 기기가 단계적으로 허가를 받는 추세여서, 사이버보안 기준 마련 속도와 산업 성장 속도 간 정합성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 처장이 강조한 식의약 50대 과제는 현장 소통을 통해 발굴한 규제개선과 지원과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식약처는 6월 말 유임된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업계, 학계, 의료계 의견을 집중 수렴해 해당 과제를 도출했다. 여기에는 의약품 공급 안정화, 바이오 의약품 신속심사 체계, 디지털 헬스케어 인허가 절차 개선, 식품 안전성 평가 고도화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성분명 처방과 GMO 완전 표시제, 디지털 의료 사이버보안 가이드라인이 모두 공통적으로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수용성 간 균형을 요구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의약품과 식품, 디지털 헬스케어 모두 안전성과 접근성,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네릭 활용 확대를 통한 의약품 공급 안정과 비용 절감, 소비자 알 권리 강화를 위한 GMO 표시 확대, AI 의료기기의 보안을 강화하는 규제는 각기 방향성이 다르지만, 규제과학과 이해관계자 협의 구조가 뒷받침돼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업계와 의료계, 소비자 단체는 식약처의 후속 세부지침과 시행령 제정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 도입 수준과 방식, GMO 완전 표시제의 단계적 적용 범위, 디지털 의료 사이버보안 기준 강도에 따라 산업계 비용 부담과 환자·소비자 편익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정책 패키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규제가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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