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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까지 건보관리급여”…의사협회, 법적 대응 예고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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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와 방사선온열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정부의 ‘관리급여’ 도입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낳고 있다. 정부는 과잉 이용과 실손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비급여 관리 강화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의료계는 법적 근거가 빈약한 행정 규제로 환자 치료 접근성과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건강보험 제도 안에서 고가 비급여를 단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정부와, 시장 자율성과 의료 전문성을 중시하는 의사단체 간 갈등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6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도수치료, 방사선온열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3개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해 “실손보험사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국민 건강권을 침해한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9일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 회의에서 이들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하고, 체외충격파, 언어치료 등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관리급여는 의료적 필요도는 인정되지만 과잉 이용이 우려되는 비급여 항목을 예비급여 성격으로 편입해 가격과 진료량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명목상 건강보험 급여로 분류하지만 본인부담률을 95%까지 부과해 기존 비급여와 유사한 비용 구조로 설계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격 상한과 급여 기준을 설정하고, 사용량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 과잉 진료를 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의사협회는 이러한 구조가 사실상 ‘비급여 통제 수단’에 가깝다고 본다. 의협은 “본인부담률 95%를 적용하면서 급여 명칭만 붙인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정부의 행정적 통제를 강화하는 옥상옥 규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급여라는 새로운 급여 유형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법률유보 원칙 위반 소지까지 제기했다.

 

의협은 “행정부가 법률적 근거 없이 선별급여로 위장해 5%만 보장하는 관리급여를 신설한 것”이라며 “이는 국민의 치료권과 의사의 적정 진료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의료 행위의 필요성과 방법을 임상 전문가가 아닌 행정 기준으로 제한하면, 실제 현장에서 환자 특성에 맞춘 치료 선택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의협은 비급여의 성격에 대해서도 정부와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협회는 “의료적 적합성은 확보했지만 경제적 당위성이 떨어져 급여화되지 못한 것이 비급여”라며 “이를 행정적으로 저가 통제하면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방법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도수치료나 방사선온열치료처럼 근골격계 통증 관리나 암 치료 보조 수단 등으로 활용되는 비급여가 과도한 가격 압박을 받을 경우, 관련 병원 서비스와 의료기기 산업 전반도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도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협의를 요청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무시한 채 관리급여 지정을 강행했다”고 밝히며, 정책 추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 삼았다. 특히 비급여 관리를 위한 예비지정제도 등 기존 체계 내 개선 방안 대신 새로운 급여 유형을 추가한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정부는 실손보험 재정 악화를 부르는 과잉 비급여 이용을 구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수치료, 신경성형술, 방사선온열치료 등은 일부 병원에서 패키지 상품 형태로 제공되거나 장기 반복 처방 사례가 적지 않아, 환자 부담과 보험 지급액 모두 급증해 온 영역으로 꼽힌다. 관리급여를 도입해 사용 범위와 횟수 기준을 명확히 하면, 의료 남용과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의 접근이 ‘실손보험사 재정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고 본다. 의협은 “정부 조치가 실손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려는 조치일 뿐, 국민 건강권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환자의 실질적인 비용 부담 구조와 치료 선택권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도수치료와 같은 물리치료 기반 비급여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 만성 통증 환자 등에서 수요가 높아, 과도한 이용 억제가 오히려 치료 공백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법률 측면에서는 국민건강보험법 체계와의 정합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행 법령은 요양급여, 선별급여, 비급여 등으로 구분해 보험 적용 범위를 정하고 있으며, 관리급여라는 별도 유형은 명시돼 있지 않다. 정부는 선별급여의 한 형태로 관리급여를 운영한다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의사단체는 “입법 없이 행정 해석만으로 새로운 급여 틀을 도입한 것”이라며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의 관리급여 신설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등 강도 높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협회는 “환자가 치료받을 권리,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비급여 관리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예비지정제도 도입 등 현행 비급여 체계 내에서 자율 규율 방안을 의료계와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첨단 의료기술 도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보장할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관리급여 논란이 고가 비급여를 둘러싼 보험 재정, 의료 남용, 환자 선택권, 의료 자율성 간 균형점을 어떻게 다시 설정할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 보험사, 정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만큼,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와 정부의 협의 구조가 복원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을 둘러싼 갈등 구도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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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관리급여#도수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