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바이오 국가전략"…과기정통부, 선도국 도약 해법 모색
인공지능 기반 바이오 기술이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패러다임을 뒤흔들면서 정부가 국가 차원의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현장 밀착형 정책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업과 연구자 의견을 직접 수렴해 AI 바이오 국가전략 안을 다듬겠다고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략이 데이터 인프라, 규제 정비, 인재 양성까지 포괄하는 종합 로드맵으로 구체화될 경우 글로벌 선도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4일 구혁채 1차관이 AI 바이오 기업 프로티나를 방문해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AI 바이오 국가전략 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현장 중심 과학기술정책을 표방한 프로젝트 공감118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특히 AI 발전으로 바이오 연구 방식이 실험 중심에서 데이터·알고리즘 기반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맞춰 산학연병 각 주체의 요구를 전략에 반영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구 차관은 프로티나가 개발 중인 단백질간 상호작용 분석 플랫폼을 직접 살펴봤다. 단백질은 질병 발생과 진행에 관여하는 핵심 생체분자로, 어떤 단백질이 어떤 상대와 결합해 신호를 전달하는지가 질환의 발병 메커니즘과 치료 타깃을 결정한다. 최근에는 AI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복잡한 단백질 접힘 문제를 고전적 계산 방식보다 훨씬 빠르게 해결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관련 AI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글로벌 연구 지형도도 바뀌고 있다.
특히 단백질 구조 예측에 그치지 않고, 생명체 내부에서 이뤄지는 단백질간 상호작용을 고속·고감도로 탐지하는 기술은 AI 바이오 경쟁의 차세대 승부처로 꼽힌다. 후보물질이 실제 인체 환경에서 어떤 단백질 네트워크에 개입하는지 미리 계산하면, 독성 문제나 오프 타깃 효과를 앞단에서 걸러낼 수 있어 신약 후보 발굴에서 임상 진입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이 상용 수준으로 정착될 경우, 약효 예측 정확도와 실패 비용을 동시에 개선해 신약 개발 전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이어진 간담회에는 AI 신약 개발, 의료기기, 바이오 제조 데이터·인프라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AI 바이오 모델 구축과 고성능 컴퓨팅 자원 확보,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한 검증 체계, 혁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데이터 접근성과 활용성 제고, 공공·민간 인프라 구축 지원 방향 등을 축으로 하는 AI 바이오 국가전략 안의 방향성을 공유했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실제 의료기관·제약사·장비업체가 활용 가능한 표준과 레퍼런스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글로벌 경쟁 구도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구 차관은 발언에서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제네시스 미션을 언급하며, AI와 바이오를 결합한 국가 차원의 대형 프로젝트가 이미 주요국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대 언어모델과 유전체·단백질 데이터를 결합해 질환 예측, 후보물질 생성, 임상 설계 지원까지 포괄하는 통합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이 흐름을 따라가기만 할지, 특정 분야에서 선도 포지션을 확보할지는 향후 국가전략의 범위와 실행력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바이오 확산을 위해선 데이터 규제와 윤리, 인허가 제도 정비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신약 후보 탐색부터 디지털 의료기기까지 아우르는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임상·유전·이미징 데이터가 대규모로 필요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상업적 활용 사이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관건이다. 또 AI가 설계에 참여한 신약 후보나 AI가 진단·치료 보조를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해 식품의약품 규제 당국이 어떤 기준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할지에 따라 산업 진입 속도가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AI 바이오 국가전략을 구체화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구 차관은 바이오를 과학기술과 AI가 교차하는 대표적 분야로 규정하며, AI가 기존 실험·통계 중심 바이오 연구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AI 바이오 분야를 선도하려면 미국 제네시스 미션과 같은 조직적·전략적 대응이 국가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차관은 연구계와 산업계 협력을 통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데이터 인프라, 컴퓨팅 자원, 인허가 연계, 인력 양성 등을 포괄하는 종합 패키지가 마련돼 실제 프로젝트로 집행될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산업계는 정부가 예고한 AI 바이오 국가전략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바이오 산업의 좌표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