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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도 판사 심문 필요" vs "증거인멸 빌미"…법원·검찰, 사전심문제 정면 충돌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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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압수수색영장을 판사가 사전에 대면 심문해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를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 충돌했다. 형사사법 절차를 인권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과, 디지털 범죄 시대 신속 수사 필요성이 맞부딪친 양상이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함께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이틀차 공청회를 열었다. 국회가 사법개혁 과제로 논의 중인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와 형사사법제도 개선 방안을 두고 법원과 검찰, 학계 인사가 나와 찬반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네 번째 세션에서 발제에 나선 조은경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부장판사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영장재판 실무 경험을 언급하며 "영장재판을 담당해본 입장에서 짧은 시간의 서면심리만으로는 영장을 발부할지, 어떻게 최적의 범위로 영장을 발부할지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본안 재판에서도 법정에서의 심리를 통한 깊은 이해가 확보된 이후에야 문제 지점이나 적절한 해결책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영장재판에서의 사전 대면 심리도 마찬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 부장판사는 수사 지연 우려에 대한 반론도 내놓았다. 그는 "심문이 이뤄지는 경우는 복잡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소수의 사건에 한정될 것이므로 문제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다만 현재 국회에 발의된 여러 법률안 중 수사기관이 아닌 제3자를 심문 대상으로 하는 방안에 대해선 "정보 유출로 인한 증거 멸실·훼손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무부 추천 토론자로 참석한 소재환 대전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제도 도입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소 부장검사는 "(피의자가) 법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휴대전화 폐기, 공범과 말맞추기, 증인 회유, 해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등과 같은 증거인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 마약, 보이스피싱, 기술유출 등에서 "증거를 삭제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데, 사전심문 절차가 도입되면 수사기관의 대응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영장 청구 후 발부, 집행까지 걸리는 시간도 상당한데 사전심문 절차까지 도입될 경우 심문기일 지정과 심문 대상자의 출석 일정 조율 등으로 인한 심각한 증거확보 절차 지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판사가 사건 담당 검사와 경찰관에 대해 당시까지 수집된 증거의 내용 및 증거 수집 방법, 영장에 의해 압수할 물건 등을 심문하게 되면 점차 압수수색 방법은 물론 수사 방향까지 주재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 재량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학계는 과거 인신구속 제도 변화를 거론하며 사전심문제 도입에 무게를 실었다. 한상훈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토론에서 "과거 1990년대 구속영장실질심사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강력한 반대와 수사 지연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현재는 인권 보장의 핵심 장치로 성공적으로 정착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영장 심문제도 또한 이런 역사적 경로를 따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특히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 디지털 저장매체에는 개인의 전 인격과 사생활이 담겨 있어 그 압수수색은 제2의 신체 구속이라 불릴 만큼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수반한다"며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과거 긴급구속 제도가 긴급체포 제도로 바뀌고,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실질심사, 체포적부심사 제도가 도입된 과정도 소개됐다.

 

실제로 1996년까지 수사기관은 법원의 심문 없이 긴급구속을 할 수 있었지만, 인권보장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권한이 긴급체포로 축소됐다. 이후 1997년 형사소송법 개정 시행으로 체포영장 제도,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 체포적부심사 제도가 도입됐다. 그 과정에서 사전 구속영장과 긴급구속 후 사후 구속영장 구분은 사라지고, 수사기관은 체포까지만 할 수 있으며 구속을 위해서는 모든 경우 판사의 사전 심사를 받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한 교수는 "당시에도 법원과 검찰, 학계에서 격한 논쟁과 오랜 검토가 있었다"며 압수수색 절차 개편도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부장판사는 구속 기간과 관련해서도 법원의 재량 완화를 주장했다. 현재 심급당 최장 6개월로 정해진 구속기간에 대해 "형사재판 논점의 복잡화, 공판정에서의 심리 강화 등을 고려하면 완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영장심사 단계에서 구속 대체 조건을 제시하고, 이 조건이 충족되면 피의자 석방을 전제로 영장을 발부하는 이른바 조건부 석방 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김정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건부 구속 제도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조건부 구속제도는 영장재판이 범죄혐의가 아니라 도주·증거인멸 우려라는 구속 사유에 중점을 두게 한다"며 무죄추정 원칙을 구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영장 단계에서 방어권과 인권 보장을 보다 두텁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형사사법 시스템 전반의 견제 구조를 손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윤동호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고발인의 재정신청 범위를 고소인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발인도 고소인처럼 모든 범죄에 대해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강화해 수사권과 공소권 행사에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윤 교수는 향후 공소청 설립을 전제로 한 공소권 견제 모델도 제안했다. 공수처와 공소청을 상호 견제 기관으로 설계해 재정법원 단계로 가기 전 공소 여부를 다시 한번 걸러내자는 구상이다. 그는 "공소청 불기소 결정은 공수처가, 공수처 불기소 결정은 공소청이 먼저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새로운 공소 전담 기구가 상호 감시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놓고 법원과 검찰, 학계의 견해 차이가 여전히 컸지만, 형사사법 절차를 둘러싼 인권 보장 강화 요구와 수사 효율성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공감대도 확인됐다. 국회는 공청회 논의 내용을 토대로 관련 법안 심사를 이어갈 전망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가 인권 보호와 신속 수사 원칙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따라 압수수색 제도 개편의 방향과 형사사법 체계 전반의 재편 폭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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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압수수색영장사전심문#법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