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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점포 늘지만 어렵다”…디지털 취약계층 소비 격차 심화 우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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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결제 시스템이 일상적인 유통·서비스 인프라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 환경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인건비 절감과 24시간 운영을 앞세운 무인점포는 편의점과 카페를 넘어 아이스크림 가게, 밀키트 매장, 저당·저칼로리 식품 전문점, 꽃가게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결제 절차와 이용 방식이 매장마다 달라지고, 화면 중심의 복잡한 인터페이스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은 물론 젊은 층 일부도 이용 과정에서 구조적인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무인화 흐름 자체는 되돌리기 어렵지만, 충분한 설계와 교육 없이 속도만 앞세울 경우 소비 격차와 디지털 복지가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무인점포 수는 6300여 개를 넘어섰다. 4년 사이 점포 수는 18배 이상 늘었고, 같은 기간 이용 건수는 68.7배까지 불어나는 등 무인 결제 기반 매장은 유통업의 대표적인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출입부터 결제까지 인공지능 기반 키오스크, 모바일 앱 연동, 무인 출입 인증 장치 등이 결합된 형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구매 절차를 익히지 못한 이용자가 매장 앞에서 발길을 돌리거나, 결제 화면 앞에서 장시간 머무르다가 결국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60대 박민식 씨는 최근 집 근처에 처음 문을 연 무인점포를 방문했다가 물건을 들고도 결제를 포기했다. 결제대 화면을 여러 차례 눌러보다가 카드 태깅 위치와 결제 진행 단계를 이해하지 못해 결국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박 씨는 주변에 직원이나 점원이 없는 구조 자체에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모르면 바로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장벽으로 꼽으며, 연령대가 높은 이용자를 위한 안내 방식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젊은 층이라고 해서 무인 시스템에 완전히 익숙한 것은 아니다. 대학생 김지연 씨는 프린트 카페 형태의 무인점포를 처음 이용했을 때 카드 등록과 출력 옵션 선택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40분 이상 매장 안을 서성였다고 회상했다. 화면 안내 문구는 길고 복잡했으며, 인쇄 전까지 여러 번 되돌아가야 하는 구조라 단계마다 다시 설명을 읽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무인 카페나 무인 편의점에서도 매장마다 결제와 인증 방식이 제각각이라 첫 방문 시마다 새로운 절차를 다시 학습해야 하는 피로감이 쌓인다고 했다.

 

문제는 무인 매장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경험이 단발적인 불편을 넘어 구조적인 배제와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고령층과 정보 격차가 큰 계층은 무인점포 출입 자체를 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천대 소비자학과 이영애 교수는 디지털 취약계층이 정보 격차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라며, 무인·온라인 중심 유통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선택권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경우 오프라인 전통 매장이나 대면 서비스만 이용하다 보니 동일 상품도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하는 역차별적 소비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무인점포 확산세는 인건비 구조와 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되돌리기 어렵지만,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설계와 정책적 보완 없이는 소비생활 복지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분석한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명예교수는 무인점포가 늘어나면 취약계층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내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상적인 물건 구매 행위조차 낯선 언어 환경에 놓인 해외 체류자처럼 심리적 장벽과 실패 경험을 반복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상 속 물건 구매는 디지털 복지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며, 이를 둘러싼 접근 권한이 제한될 경우 소비생활 복지가 상당 부분 침해된다고 강조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교육과 규제,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은희 명예교수는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노인과 장애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인점포 이용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특히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일정 비율 이상 유인 매장을 유지하도록 유도하거나, 무인점포 비율을 조절하는 규제 도입도 한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키오스크 화면 디자인과 결제 절차를 고령층 친화형으로 표준화하는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애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단순 캠페인 수준을 넘어 보조금 사업과 협회 차원의 공적 자금 지원을 통해 교육 횟수 자체를 양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기와 무인 결제 시스템을 실제로 다뤄보는 체험형 교육, 매장 내 안내 인력 배치에 대한 인건비 보조, 이해하기 쉬운 다국어·그림 중심 안내 시스템 도입 지원 등이 공적 재정을 통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보 격차를 완화하지 못하면 유통 구조의 디지털 전환이 곧바로 소비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무인점포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단순한 매장 운영 방식의 변화에서 벗어나, 디지털 복지와 소비자 권리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유통 업계는 인건비 절감과 효율성만이 아니라 이용자 경험과 접근성, 교육 체계를 포괄하는 설계가 장기적인 시장 신뢰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제도권 역시 디지털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계층을 어떻게 포용할지 고민을 깊게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는 무인점포가 생활 인프라로 완전히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를 남겨두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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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취약계층#무인점포#소비생활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