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계단 오르기"…바이엘, 폐동맥고혈압 경고 확산
호흡곤란과 만성 피로 같은 평범해 보이는 증상이 폐동맥고혈압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의 신호로 주목받고 있다. 폐동맥고혈압은 전체 폐고혈압의 약 3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진단 난이도가 높아 상당수 환자가 병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조기 진단 여부가 생존율과 직결되는 만큼 인식 제고와 의료 접근성 개선이 향후 치료 패러다임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6일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엘코리아는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폐동맥의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 혈관이 두꺼워지고, 이로 인해 폐 혈류가 줄어들면서 쉽게 숨이 차고 피로감을 호소하게 되는 질환이 폐동맥고혈압이라고 설명했다. 조기에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우심부전으로 진행하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중증 심폐혈관 질환이다.

폐동맥고혈압의 초기 증상은 계단을 오르거나 가벼운 활동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호흡곤란, 설명하기 어려운 만성 피로감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심부전, 천식, 빈혈, 노화 등 다른 질환이나 생리적 변화와 쉽게 혼동된다는 점이다. 대한폐고혈압학회에 따르면 실제로 환자 다수는 증상 발현 후 최종 확진까지 평균 2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기간 동안 병이 서서히 진행돼 치료 개입 시점이 늦어지는 구조적인 문제가 지적된다.
국내 역학 데이터 역시 진단 공백을 드러낸다. 대한폐고혈압학회는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 수를 약 6000명으로 추산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병명을 알고 진단받은 환자는 절반 수준에 그친다. 진단 이후에도 표준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 비율은 전체 환자의 약 25퍼센트 미만으로 파악돼, 상당수 잠재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지도 부족, 정밀 검사가 가능한 전문 의료기관 접근성, 고난도 판독 역량 등 복합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평가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대희 교수는 3일 바이엘코리아가 개최한 폐동맥고혈압 인식 제고 행사 Breath is Hope 숨은 희망 토크쇼에서 질환 특성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우심부전으로 진행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진단하면서도, 병명 자체가 대중에게 낯설고 외형상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조기 발견과 빠른 치료에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상시와 달리 평지를 걸을 때보다 계단을 오르거나 약간의 경사만 있어도 숨이 더 차고, 피로감이 쉬어도 회복되지 않으며 장기간 지속된다면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장 초음파, 폐기능 검사, 심도자 검사 등 정밀 검진을 통해 다른 호흡기 질환과 구분하고 병의 중증도를 평가해야 적절한 약물 치료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 단체도 질환 인식의 사각지대를 호소했다.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파랑새 윤영진 회장은 폐동맥고혈압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으로 불리는 심장암에 비견될 만큼 생존율이 낮고, 제한된 치료 옵션과 질환명에 대한 오해로 인해 환자들이 큰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폐동맥고혈압이라는 이름이 단순 고혈압의 한 유형으로 오인돼 질환의 중증도가 축소 인식되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윤 회장은 최근 국내에서 폐동맥고혈압 진단 건수가 늘고, 새로운 기전의 약제가 연이어 도입되며 일부는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되면서 치료 환경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실제 환자 생존율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환자 스스로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 전반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공적 캠페인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엘코리아 이진아 대표는 폐동맥고혈압이 고혈압이라는 단어 때문에 가벼운 만성 질환 정도로 오해받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실제 환자들이 짊어지는 일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심장과 폐 기능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면서 학업, 직장 생활, 일상 활동 전반에 제약이 생기고, 산소 치료나 복합 약물 요법이 필요한 환자는 의료비 부담까지 가중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폐혈관 내피 기능 회복, 혈관 수축 경로 차단, 혈관 재형성 억제 등 다양한 기전을 겨냥한 신약 개발과 병용 요법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에는 진단 단계에서부터 유전자 검사와 영상 데이터, 임상 정보를 결합한 정밀 분류를 통해 환자별 맞춤 치료 전략을 세우는 정밀의료 접근이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국내에서는 희귀질환 보험 급여 범위, 장기 투약에 따른 경제적 부담, 전문 센터 간 치료 접근성 격차 등이 상용화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한편 이번 숨은 희망 토크쇼는 폐동맥고혈압이 희귀난치병이라는 특성상 사회적 관심이 낮을수록 진단 지연과 치료 격차가 커진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행사에서는 의료진, 환자, 제약사가 함께 실제 환자 여정을 공유하며, 조기 발견과 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한 사회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산업계는 질환 인지도를 높이는 캠페인과 함께 보험 제도, 진단 인프라,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동될지가 향후 희귀질환 치료 생태계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