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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한 접시가 호흡부전까지"…테트라민 독성, 고령층 치명타 우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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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소라와 고둥 등 권패류에 들어 있는 신경독 테트라민이 고령층에서 급성호흡부전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과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연구진이 대한임상독성학회지에 호흡근 마비 직전까지 진행된 소라 섭취 중독 증례를 보고하면서, 식품 안전과 독성 정보 관리 체계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복어 독 관리에 준하는 권패류 독성 관리 및 디지털 독성 데이터 인프라 고도화가 식품·의료 융합 안전 정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연구진에 따르면 78세 여성 환자는 손자 2명과 시장에서 구입한 소라를 삶아 먹은 뒤 약 2시간 후 오심과 구토, 호흡곤란을 보여 응급실을 찾았다. 고혈압과 위암 부분 위절제술 과거력이 있던 이 환자는 내원 30분 만에 의식이 급격히 저하되고 저산소증이 진행돼, 의료진이 즉시 기관 삽관과 기계 환기를 시행해야 했다. 보존적 치료를 지속한 지 약 12시간 후 삽관을 제거했고, 이후 호흡곤란이나 추가 신경학적 이상 없이 회복해 3일간의 경과 관찰 뒤 합병증 없이 퇴원했다.

같이 소라를 섭취한 17세와 19세 손자 2명은 오심, 구토, 가벼운 어지러움 정도의 증상만 보였고, 응급실 내원 2시간 만에 퇴원했다. 세 사람은 약 10개의 소라를 비슷한 양으로 나눠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독성 최소 중독량으로 알려진 테트라민 10밀리그램을 기준으로, 연구진은 기존 논문을 토대로 이들이 총 30에서 50밀리그램 수준의 테트라민을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구체적인 개체별 독성량은 개체 차와 조리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한 수치는 산출하지 못했다.

 

테트라민은 권패류의 침샘 등에 축적되는 저분자 신경독으로, 신경근 접합부에서 신경전달을 방해해 감각 이상, 구토, 어지러움뿐 아니라 심할 경우 호흡근 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인 테트라민 중독 증상은 섭취 30분 이내에 시작되며, 독성 반감기가 24시간 이내로 짧아 대부분 자연 회복된다. 시야 흐림, 두통, 안면 홍조, 경미한 혈압 변화 등이 동반될 수 있지만, 대다수는 수액 공급과 대증 치료만으로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사례의 특징은 동일한 음식과 비슷한 노출량에도 불구하고 고령 환자에게만 호흡부전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비슷한 양을 섭취했더라도 기존 심폐질환 과거력이 있거나, 젊은 연령층에 비해 심폐기능이 저하된 고령에서는 호흡근 마비에 대한 보상 기전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해 급성호흡부전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령 증가와 기저 질환은 호흡근 힘과 폐 탄성, 가스 교환 능력을 떨어뜨려 신경독성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그간 소라와 고둥 섭취에 따른 테트라민 중독 사례가 산발적으로 보고돼 왔지만, 대부분 구토와 어지러움, 가벼운 신경학적 이상 수준에서 회복돼 생명을 위협하는 예후를 보인 보고는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응급실 현장에서도 테트라민 중독을 상대적으로 경미한 식품 중독 범주로 분류해온 분위기가 강했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는 기존 인식과 달리, 특정 고위험군에서는 테트라민 노출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식품 안전과 독성 관리 관점에서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권패류는 생물학적으로는 독성 보유 여부에 따라 세부 분류가 가능하지만,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대부분 단순히 소라나 고둥이라는 통칭으로 판매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동일 종 내에서도 독성 정도와 부위별 위험 차이를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고, 계절이나 서식 환경에 따라 독성 농도 변동도 크다. 그럼에도 소비자 대상 안내 문구나 독성 관련 경고 표기는 복어 등 고위험 어종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구진은 복어 독으로 잘 알려진 테트로도톡신과 유사한 수준으로 테트라민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테트로도톡신과 테트라민 모두 신경전달을 차단하는 작용을 하지만, 독성 강도와 작용 부위, 반감기 특성이 달라 임상 양상도 차이를 보인다. 복어의 경우 법적 규제와 전문 조리사 자격제, 표시 의무 등이 촘촘히 구축돼 있는 반면, 권패류는 명확한 독성 정보 전달 체계와 소비자 경고 시스템이 미흡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임상독성 정보 인프라 관점에서도 과제가 남는다. 현재 국내 응급의료체계에서는 특정 독성 물질에 대한 전자의무기록 기반 경보 시스템과 빅데이터 분석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테트라민과 같이 비교적 드물고 경미하다고 여겨진 독성 물질은 경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한국의 인구 구조를 감안할 때, 테트라민을 포함한 식품 유래 신경독 정보를 응급의료 정보 시스템과 연계해 고위험군 맞춤 경고 알고리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계에서는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독성 사례를 기반으로 AI 기반 예측 모델을 구축해 계절, 산지, 수확 시기별 권패류 독성 수준을 예측하는 연구도 요구된다. 이런 모델이 상용화되면 시장 유통 단계에서 독성 위험이 높은 로트에 대해 사전 차단이나 강화된 표시 의무를 적용하는 등, 식품 안전 관리 체계 전반을 정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학계 역시 다기관 증례 수집과 분석을 통해 테트라민 노출량, 연령, 기저 질환, 병원 도착까지의 시간과 예후 사이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증례 보고서는 "소라 섭취에 의한 테트라민 독성은 대체로 경미하고 예후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신경근 접합부 차단으로 인한 호흡근 마비는 급성호흡부전과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고령층과 심폐질환자 등 취약 계층에서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권패류 독성에 대한 대중 인식 제고와 함께, 식품 표시 제도와 응급 독성 정보 인프라를 얼마나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을지가 향후 식품·의료 융합 안전 정책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관련 기술과 제도가 실제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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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라민중독#권패류#응급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