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사라질 수 있어"…천대엽,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 정면 비판
정치적 충돌 지점과 사법부 수장의 경고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두고 법원 수뇌부가 강도 높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입법권과 사법권의 긴장 관계가 새 국면을 맞는 모양새다. 여야 공방 속에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논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른바 내란전담재판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에 대해 헌법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 처장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뒤 위헌법률심판 제청 가능성을 묻자 "사법부 독립이 제한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87년 헌법 아래서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특히 법안의 구조 자체가 특정 사건을 겨냥한 처분적 입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분적 법률, 즉 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처분적인 재판부 구성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진 사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 설계를 통한 개별 사건 관여는 사법부 독립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취지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안에 따르면, 내란전담재판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 추천 3명, 법무부 장관 추천 3명, 판사회의 추천 3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재판부 구성 추천 단계부터 외부 기관이 깊숙이 관여하는 구조다.
천 처장은 이 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의 추천권 보유를 집중 거론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법재판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시합의 룰, 재판의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부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인 관계에 있는 재판관들도 이 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관여가 반영된 법률에 대해 심판을 하는 구조 자체가 이해충돌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장관의 추천권도 도마에 올랐다. 천 처장은 수사권을 가진 행정부가 재판부 구성에 참여하는 구도가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권의 과잉 행사로 인한 질곡의 역사를 갖고 있고 가장 최근에도 그 연장선에서 검찰 책임자가 대통령이 됐다가 12·3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와 같은 직전의 역사가 있는데 법무부, 즉 수사권과 행정권을 대변하는 기관이 우리 사법권의 영역에 들어온다는 것은 굉장한 사법권 제한 또는 침해라는 게 저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내란 혐의 사건을 다룰 재판부 구성에 수사 주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구조적 충돌을 내포하고 있다는 취지다.
천 처장은 내란특별재판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실제 재판 진행에도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만약 내란특별재판부 법안이 통과돼 재판이 위헌성 시비로 중지돼 버리면 장기간 재판이 중단될 것"이라며 "국민들은 빨리 내란 재판이 종결되기를 바랄 텐데 국민들의 염원에 역행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위헌 논란이 소송 지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국민의힘은 천 처장의 발언을 토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추진을 강하게 견제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의원 질의에서도 드러났듯, 여당은 내란특별재판부를 특정 정치 세력을 겨냥한 맞춤형 사법 장치로 규정하며 위헌성을 부각하고 있다. 사법부 내부에서까지 헌법 질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충돌 수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전범 등에 대한 책임 있는 심판과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해 전담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법무부와 헌법재판소장 등 외부 기관이 재판부 구성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에 대해 사법부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향후 법안 수정이나 재검토 압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논란이 기존 검찰 특수부, 특검 도입을 둘러싼 공방과 맞물려 사법 시스템 전반의 정치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법부 독립을 앞세운 견제 논리와, 책임 있는 단죄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공세가 팽팽히 맞서는 구조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둘러싼 헌법적 논란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법안 세부 조항을 둘러싼 추가 논의에 나설 예정이며,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의 공식 입장과 보완 대책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