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팬 사인회 논란”…중 팝업, 브랜드 통제 부실 파장
K팝 스타의 지식재산권과 브랜드 이미지를 매개로 한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운영에서 통제 실패가 드러나며, 글로벌 팬덤 기반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위험 요인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에서 열린 블랙핑크 로제 공식 팝업 행사에서 현지 인플루언서가 사실상 ‘주인공’처럼 연출되며 공식 굿즈에 사인을 남긴 장면이 확산되자, 팬들은 IP 활용 가이드라인 부재와 운영 주체의 책임을 강하게 묻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커머스가 결합된 K팝 브랜드 비즈니스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가운데, 인플루언서 협업 구조에 대한 표준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말레이시아 연예매체 하이프 보도와 팬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달 초 중국 청두에서 진행된 로제 ‘Rosie 팝업스토어’ 마감 행사에 중국 인플루언서 데이지가 초청돼 하루 점장 콘셉트로 참여했다. 해당 팝업스토어는 로제 공식 굿즈를 판매하고 콘셉트에 맞춘 포토존을 운영하는 등 아티스트 IP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팝업 커머스 형태로 기획됐다. 문제는 행사 당일 현장 진행 방식이었다. 현장 사회자가 데이지를 아이돌에 버금가는 주인공처럼 소개했고, 데이지가 방문객들과 일대일 사진 촬영을 하며 로제 공식 굿즈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장면이 촬영돼 온라인에 퍼졌다.
팬들이 문제 삼는 지점은 인플루언서 협업이라는 명목으로 공식 IP 공간이 ‘비공식 팬미팅’처럼 변질됐다는 점이다. 공식 팝업스토어는 통상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설계된 공간인데, 현지 운영 과정에서 인플루언서가 주목도를 가져가면서 IP 중심축이 흔들렸다는 평가다. 팬들은 “로제 팝업인데 인플루언서 팬 사인회가 됐다”, “현장 연출과 동선, 사인 허용 범위까지 사전 시나리오가 부실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데이지가 로제가 평소 선호하는 스타일과 유사한 의상을 착용한 점도 논란을 증폭시켰다. K팝 아티스트의 패션과 메이크업은 글로벌 팬덤을 타깃으로 한 정교한 브랜드 전략이자 지식재산으로 간주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로제의 이미지와 브랜드 톤을 의도적으로 모방한 것 아니냐”, “팝업의 주체가 아티스트에서 인플루언서로 이동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상에서 이미지가 단독으로 소비될 경우, 로제 브랜드와 데이지 개인 브랜드 간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데이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입장을 냈다. 그는 “주최 측 초청으로 하루 점장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모든 진행은 사전 협의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로제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금전적 대가는 받지 않았다”며 상업적 의도보다는 프로모션 측면을 부각했다. 또 “팝업스토어의 중심은 언제나 로제와 팬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글로벌 팬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일부 팬들은 “홍보와 사칭은 전혀 다른 문제”, “공식 굿즈에 이미지 소유권과 무관한 제3자가 사인을 남긴 행위는 선을 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K팝 IP는 음원, 영상, 공연뿐 아니라 굿즈, 팝업, 메타버스 공간까지 확장된 디지털·피지컬 융합 자산이기 때문에, 현지 운영 파트너와 인플루언서가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두고 K팝과 인플루언서 경제가 충돌한 전형적인 장면으로 본다. 플랫폼 중심 팬덤 경제가 커지면서 회사들은 현지 소비자 접점을 넓히기 위해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을 늘려왔지만, 브랜드 주도권과 팬심 관리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처럼 규제 환경과 문화 코드가 다른 시장에서는, IP 사용 범위, 현장 연출 권한, 사인과 사진 촬영 가능 범위를 계약 단계에서 세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유사한 분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콘텐츠 산업 관점에서 보면, 이번 논란은 K팝 IP 관리 체계가 더 이상 음악 산업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고, 커머스, 리테일, 디지털 플랫폼 전반의 규범과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외 기획사들은 최근 아티스트 브랜드를 활용한 팝업, 체험형 매장, 디지털 굿즈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인플루언서와의 공동 프로모션에 대한 윤리·운영 가이드라인 수립이 요구된다. 한 콘텐츠 산업 연구자는 “IP를 활용한 현지화 전략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브랜드 통제를 어디까지 유지할지가 K팝 비즈니스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라며 “팬덤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설계하는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사태가 일회성 논란으로 끝날지, 글로벌 K팝 IP 운영 표준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