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분쟁 급증”…치과, 환불 갈등에 규제 논의
치아 교정과 임플란트 등 비급여 치과 진료를 둘러싼 환불 갈등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고가의 시술을 앞세운 선납 유도, 무료 진단·파격 할인 마케팅이 결합하면서 소비자는 치료 중단 시 환급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진단 장비와 첨단 소재의 확산으로 치료 단가가 높아진 만큼, 진료비 구조와 계약 조건을 둘러싼 법적·제도적 장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향후 치과 진료비 표준 안내서, 전자 치료비용계획서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지훈 씨는 치과에서 금속 브라켓을 이용한 치아 교정 치료를 시작하며 270만 원을 한 번에 결제했다. 상악에 교정 장치를 부착한 당일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다음 날 곧바로 중도 해지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이미 교정 장치 부착으로 선납 진료비가 모두 소진됐다며 환급액이 없다고 통보했다. 고가의 교정 장치와 진단용 3차원 스캐닝 등 초기 단계 비용을 일괄 소진 처리했다는 논리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실제 치료 기간에 비해 과도한 비용 배분이라는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김지영 씨는 방사선 검사가 무료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인근 치과를 찾았다. 상담 과정에서 임플란트 5개 시술 계약을 체결하며 200만 원을 선납했고, 치료비 완납 시 할인과 수술 전날까지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들었다. 그러나 며칠 후 불안감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자, 치과는 환급 처리를 진행 중이라고만 안내했고 선납금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마케팅 문구와 실제 환불 기준 사이의 괴리가 환자 불만과 분쟁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치과 진료 관련 피해 구제 신청은 지난 3년 사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총 635건이 접수됐고, 연도별로는 2022년 144건, 2023년 168건, 2024년 195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128건이 접수돼 전년 동기 95건보다 34.7퍼센트 늘었다. 디지털 파노라마 엑스레이, 3차원 CT 등 진단 장비와 CAD CAM 기반 보철 시스템으로 진료 과정은 고도화됐지만, 환자와 의료기관 간 비용·계약 정보 비대칭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유형별로 보면 부작용과 관련된 분쟁이 403건으로 전체의 63.5퍼센트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시술 후 통증 지속, 기능 저하, 심미적 불만 등 임상적인 결과를 둘러싼 다툼이 대표적이다. 진료비 관련 구제 신청은 201건으로 31.7퍼센트를 기록했다. 고가의 치과 치료 특성상 진료비와 환불 기준에 대한 갈등이 전체 분쟁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진료비 분쟁 중에서는 진료비 및 위약금 과다 공제가 168건으로 83.6퍼센트를 차지했다. 시술 전 선납한 비용에서 실제 제공된 진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 공제됐다는 주장이다. 임플란트 식립 전 진단·상담 단계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소진 처리하거나, 교정 치료에서 초기 장치 부착만으로 상당액을 공제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치료 계획 변경 또는 추가 비용 요구와 관련된 분쟁도 33건, 16.4퍼센트에 달했다. 초기 상담 시 설명된 범위를 넘어 추가 임플란트, 보철 교체, 골이식 등 비용이 발생했다는 호소가 많다.
치료 유형별로 보면 임플란트가 111건으로 55.2퍼센트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치조골 이식, 상악동 거상술 등 고난도 수술과 맞물려 디지털 네비게이션 수술 장비, 고가 임플란트 재료가 사용되면서 환자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보철 치료 분쟁이 34건, 16.9퍼센트, 교정 치료 관련 분쟁은 29건, 14.4퍼센트였다. 투명 교정 장치, 미니 스크루 등 디지털 교정 기법이 확대되면서 치료 기간과 비용 앵커링에 대한 분쟁 여지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주목할 점은 소비자에게 치료비용계획서가 제공된 사례가 전체의 39.3퍼센트에 그쳤다는 점이다. 치료비용계획서는 환자의 구강 상태, 예정된 치료 단계, 예상 소요 기간, 단계별 비용을 항목별로 명시한 문서다. 의료기관은 환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구두 설명에 그치거나 단순 견적서 형태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영상과 3차원 모형으로 치료 계획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비용 구조는 서면으로 남기지 않아, 향후 분쟁 발생 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특히 무료 진단과 한시적 할인 등 이벤트성 마케팅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방사선 촬영이나 3차원 CT 촬영을 무료로 내세운 뒤 고가 임플란트 패키지를 권유하거나, 당일 계약 시 대폭 할인을 제시하면서 전액 선납을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초기 진단에 인공지능 분석과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도입하는 추세지만, 환자에게는 객관적 자료라기보다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료계 관계자는 무료 진단과 선납 할인에 앞서 계약 조건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치료 계약 시 구강 건강 상태, 구체적인 치료 계획과 예상 기간, 각 단계별로 어떤 진료가 이뤄지고 얼마의 비용이 청구되는지 상세한 설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진료비 전액을 한 번에 납부하기보다, 교정 장치 부착, 임플란트 식립, 보철 장착 등 주요 단계별로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 추후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향후 제도 개선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치과 비급여 진료에 대해 표준화된 치료비용계획서 서식을 도입해 전자문서로 제공하고, 환자 동의 과정을 의무적으로 남기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치과 진단 장비가 고도화될수록 진료 과정의 데이터는 정교해지는 만큼, 비용과 계약 측면에서도 같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 소비자 단체는 이런 논의가 실제 치과 현장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