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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빠지는 약도 추적관리”…식약처, 식욕억제제 투약내역 확대 적용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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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용 마약류 관리에 디지털 기반 사전 검증 절차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체중감량 목적의 식욕억제제가 과다 처방과 중독 우려 약물로 떠오르자, 규제당국이 투약 이력을 의무 수준에 가까운 방식으로 추적 관리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마약류 오남용 방지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진료 지연과 의료 현장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보 인프라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16일 의료용 마약류 사전 검증 제도인 의료용 마약류 투약내역 확인 제도의 대상 성분을 식욕억제제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 현재 의료 현장에서 체중감량 목적 처방이 많은 성분이다. 의사는 처방 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이른바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통해 환자의 과거 1년간 의료용 마약류 투약내역을 확인하도록 권고받게 된다.

의료용 마약류 투약내역 확인 제도는 동일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돌며 같은 계열 약을 반복 처방받는 의료쇼핑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설계된 디지털 감시 체계다. 의료기관의 처방소프트웨어와 연계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서 환자의 1년 단위 투약 이력을 실시간 조회해, 기존 복용량과 병용 위험을 고려한 처방 여부를 판단하도록 돕는다. 기존에는 펜타닐 제제 등 일부 고위험 마약성 진통제와 ADHD 치료제 중심으로 운영돼 왔으나, 이번 조치로 체중조절용 약물까지 관리 범주가 넓어졌다.

 

기술적으로는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연동해,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입력하는 순간 자동 알림창이 뜨도록 구현됐다. 별도 로그인을 추가로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방 과정에서 팝업 형태로 환자의 마약류 투약내역 요약 정보가 뜨는 구조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식욕억제제 처방 이력이 있는 2만3483개 병의원 가운데 1만3398개 기관이 자동 팝업 기능을 갖춘 처방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전체 식욕억제제 처방 기관 중 약 57퍼센트가 IT 연동 기반의 사전 확인 인프라를 확보한 셈이다.

 

식약처는 앞서 2023년 6월 펜타닐 정제 및 패치제에 대해 투약내역 확인을 의무화했다. 도입 1년 후 펜타닐 처방량은 전년 동기간 대비 16.9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6월에는 처방량 증가세가 뚜렷했던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를 권고 대상에 포함시켰고, 이후 의료쇼핑방지정보망 조회 빈도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당국은 이러한 디지털 사전 검증 체계가 실제 처방 행태를 조정하고 오남용을 줄이는 효과를 입증한 사례로 보고 식욕억제제까지 확대 적용에 나섰다.

 

식욕억제제는 흔히 살빠지는 약으로 불리며 체중감량과 미용 목적 수요가 높은 약물이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감소시키는 성분으로, 장기간 과다 복용 시 의존성과 중독, 심혈관계 부작용 위험이 지적돼 왔다. 특히 복수 의료기관을 이용해 다중 처방을 받거나, 온라인 정보에 기반해 자의적으로 복용량을 늘리는 패턴이 보고되면서, 통합 투약 이력 기반의 사전 필터링 필요성이 커졌다. 이번 조치는 IT 기반 데이터 연동을 통해 개인별 누적 복용량을 파악하고, 의사가 과거 처방 내역을 근거로 치료 필요성과 안전성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기존 단편적 진료 정보 체계의 한계를 보완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의료용 마약류와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디지털 감시 강화가 일반화되는 흐름이다. 미국은 주 단위 처방약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오피오이드 등 고위험 약물 처방 이력을 의사가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체계를 운영 중이며, 일부 주에서는 조회 의무화에 따라 오피오이드 과다 처방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유럽 역시 전자 처방 시스템과 연계한 통합 약물 이력 관리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의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은 이러한 흐름과 유사한 방향에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의료기관 간 시스템 연동 수준과 현장 수용도가 기관별로 차이를 보인다. 아직 자동 팝업 기능을 도입하지 않은 1만개 이상 병의원에서는 처방 단계에서 투약내역 조회가 번거롭거나 누락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욕억제제 확대 적용으로 조회 수요가 늘어날 경우, 시스템 처리 속도 저하와 진료 대기 시간 증가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완화하려면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추가 연동, UI 단순화, 조회 응답속도 향상 등 IT 인프라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식약처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식욕억제제 투약내역 확인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도록 식욕억제제 처방 이력이 있는 의사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홍보 포스터 배포, 카카오톡 알림 발송 등 개별 안내에 나선다. 제도 초기 민원과 불편사항 해소를 위한 상담센터도 운영해 현장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향후에는 졸피뎀 등 오남용 우려가 큰 다른 의료용 마약류로도 투약내역 확인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부 대상과 시기, 방법 등은 의료계와의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강백원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은 체중감량과 미용 목적의 무분별한 식욕억제제 복용이 의료용 마약류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강력히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그는 투약내역 확인 도입 초기에는 진료 시간이 다소 늘어날 수 있으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예방하려면 처방 의사의 자율적 참여와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 현장은 디지털 기반 마약류 통합 관리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주시하는 한편, 기술과 제도, 의료현장의 수용성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착할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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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의료쇼핑방지정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