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코스피 2.24% 급락 마감…외국인 1조 넘게 팔고 4,000선 붕괴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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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산업을 둘러싼 버블 논쟁과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이 동시에 부각되며 국내 증시가 16일 크게 흔들렸다. 코스피가 장중 4,000선을 내주고 2% 넘게 떨어지는 등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이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 충격인지, 업종별 재평가의 신호탄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6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91.46포인트 2.24% 하락한 3,999.13에 마감했다. 지수는 장 초반 4,093.32에서 0.07% 오른 채 출발했지만 곧 하락 전환했고, 오후 3시께 4,000선을 내주며 장중 3,996.23까지 밀렸다. 장 마감까지 약세 흐름이 이어지며 끝내 4,000선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스피 3,999.13로 2.24% 급락…AI 회의론·중국 경기둔화·미중 갈등 겹악재
코스피 3,999.13로 2.24% 급락…AI 회의론·중국 경기둔화·미중 갈등 겹악재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가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344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매도 행렬의 선봉에 섰다. 기관도 2,213억 원 규모로 순매도에 나서며 지수를 압박했다. 반면 개인은 1조2,503억 원을 순매수하며 하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섰다.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외국인 매도 기조가 뚜렷했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 3,015억 원을 순매도하며 현물과 선물을 동시에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 역시 선물시장에서 420억 원 규모로 매도 우위를 보인 가운데, 기관은 3,871억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방어에 나선 양상이다.

 

이번 급락에는 간밤 미국 증시 약세와 글로벌 투자심리 위축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09%,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는 0.16% 떨어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0.59% 하락하며 상대적으로 낙폭이 컸다.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AI 관련 종목의 고평가 논란과 버블 우려가 이어지면서 성장주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흐름이다.

 

여기에 미국의 주요 실물 경제지표 발표를 앞둔 관망 심리가 더해지며 위험자산 회피 기조가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물가와 소비, 제조업 관련 지표가 연준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단기적으로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기보다는 현금 비중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는 분위기다.

 

중국 경기 둔화 우려도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전날 발표된 중국의 소매판매와 산업생산 등 주요 실물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성장세 약화와 부동산 시장 위기 재점화 가능성이 다시 부각됐다. 이에 따라 아시아 주요 증시 전반으로 불안 심리가 번지며 한국 증시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중 갈등의 성격이 안보와 첨단기술 영역까지 깊숙이 확산되는 점도 국내 증시에는 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이 무역 관련 합의 이행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영국과의 AI 등 첨단기술 분야 파트너십을 일시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긴장 고조가 다시 투자자들의 경계감을 자극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지정학 리스크와 관련해 “지난 12일 보도된 미군의 이란행 중국 화물선 급습 및 화물 압수 사건이 시장에서 뒤늦게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됐다”며 “미국의 대외 정책이 제재를 넘어 물리적 실력 행사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이 최우방국인 영국과 체결한 기술 번영 합의 TPD의 이행을 중단하기로 한 점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안보와 첨단기술 협력을 지렛대로 동맹국에도 무역 양보를 요구하는 거래 중심 접근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글로벌 AI 기술협력 생태계 훼손 우려가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 연구원은 “이들 이슈가 시장 전체의 방향성을 좌우할 수준의 펀더멘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단기 뉴스 흐름에 과도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오늘 밤부터 발표될 미국 경제지표와 수급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이 대외 변수에 과민 반응한 결과라는 평가와 함께, 향후 실물지표와 기업 실적이 추세를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목별로는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주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1.91% 하락한 10만2,800원에, SK하이닉스는 4.33% 급락한 53만 원에 각각 장을 마쳤다. AI와 메모리 반도체 성장 기대를 반영해 고평가 논쟁이 일었던 종목군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대형주가 약세를 보인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만 1.02% 상승하며 시가총액 상위주 가운데 홀로 강세를 나타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5.54% 떨어졌고, HD현대중공업은 4.90%, SK스퀘어 3.93%, 한화에어로스페이스 3.63%, 기아 2.58%, 현대차 2.56% 등 주요 종목의 하락폭이 컸다.

 

업종별로는 방어주 성격의 일부 섹터만이 상대적인 강세를 보였다. 음식료·담배 업종이 1.76% 상승했고, 통신은 0.92%, 섬유·의류 0.58%, 전기·가스 0.39% 올라 방어주 선호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경기 및 성장 민감 업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금속 업종이 6.82% 급락했고, 건설은 3.18%, 운송장비·부품 3.11%, 전기·전자 3.05%, 의료·정밀기기 2.42% 각각 하락했다.

 

코스닥 시장도 외국인 매도 물량이 집중되며 낙폭이 커졌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2.72포인트 2.42% 내린 916.11에 마감했다. 지수는 개장 직후 938.23에서 0.06% 떨어진 채 출발한 뒤 장내 내내 낙폭을 키우며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수급을 보면 코스닥에서도 외국인이 3,595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기관은 67억 원 규모로 소폭 순매도했고, 개인은 4,074억 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매물을 받아냈다. 유통시장 전반에서 개인이 하락장을 매수 기회로 인식하는 모습이지만, 외국인 중심의 수급 쏠림이 당분간 지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에서는 일부 바이오 종목이 선방했다. 디앤디파마텍이 5.59% 상승했고 에임드바이오는 2.70% 올랐다. 다만 2차전지와 로봇 등 성장주에서는 낙폭이 컸다. 에코프로는 8.08%, 에코프로비엠은 7.90% 각각 하락했고, 로보티즈는 6.87%, 레인보우로보틱스 3.87%, 리노공업 3.73% 떨어졌다.

 

거래대금은 양 시장 모두에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날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16조4,509억 원, 코스닥 시장 거래대금은 13조1,186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과 정규마켓을 합한 거래대금은 4조8,746억 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가격 조정 국면에서 거래가 동반 확대되는 모습이어서, 향후 수급 방향에 따라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외환시장에서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6.0원 오른 1,477.0원에 형성됐다. 미국과 중국 관련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이 재차 강화되는 모습이다.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의 채산성에는 우호적일 수 있으나,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 우려를 키워 국내 증시에서의 이탈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 관계자들은 AI 성장성에 대한 회의론, 중국 경기지표 부진, 미중 간 안보·기술 갈등 심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험자산 선호가 약화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분간 투자자들은 미국 주요 실물지표 발표와 글로벌 수급 흐름을 확인하면서 보수적인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증시의 향후 흐름은 미국 통화정책 방향과 중국 경기 회복 속도, 기술 패권 갈등의 향방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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