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합동 성공사례"라던 쿠팡…국정원 "명백한 허위" 맞서 배경훈 "피조사기관 역할하라"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싸고 쿠팡과 국가정보원이 정면으로 충돌한 가운데, 국회 청문회에서 양측 주장이 극하게 엇갈리며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산업계에선 쿠팡의 이례적인 강경 태도를 놓고 국내 여론 악화를 감수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31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 조사 경위를 묻는 질의에 "민간기업과 정부기관의 성공적인 협력 사례"라고 규정하며, 이른바 '셀프조사'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유출자 진술 청취와 기기 회수 등이 "정부 기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날 쿠팡에 조사 지시 기관으로 지목된 국가정보원은 이를 "명백한 허위"라고 국회에 통보하며 강력 반발했다. 국정원은 로저스 대표에 대해 위증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국회에 공식 요청한 상태다. 양측 주장이 충돌하면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정치·법적 공방 국면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청문회장에서 로저스 대표는 거듭해서 정부 기관과의 공조를 강조했다. 그는 "왜 쿠팡과 한국 정부 공동 노력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나. 이것은 성공의 좋은 사례다. 왜 이를 한국 국민에게 알리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는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한 달 이상 일부 데이터 로그를 보유하고 있고, 기기는 2주 이상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고 싶다"며 정부 기관을 향해 압박성 발언도 내놨다.
전날 격앙된 태도로 책상을 두드리며 답변하던 로저스 대표는 이날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청문회에 임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답변의 불분명함을 지적하며 재차 추궁하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 이게 재미있나.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소리를 지르느냐"라며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영어로 "Do you think this is funny? I don't understand why I'm being treated this way. I don't know why you're yelling at me."라고 말해 청문회장이 일시적으로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국회 과방위 소속 위원들은 로저스 대표의 태도를 거세게 비판했다. 위원들 사이에서는 "답변만 하면 되는데 설교하려고 한다",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는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최민희 위원장은 로저스 대표를 겨냥해 "간 크게 대한민국 국정원을 끌어들여서 진실게임을 하는 로저스씨와는 도저히 소통이 안 된다"고 직격했다.
결국 최 위원장은 조사 관련 핵심 질의를 로저스 대표 대신 이재걸 쿠팡 법무담당 부사장에게로 돌렸다. 이 부사장은 "12월 2일 국정원으로부터 처음 공문을 보내왔고 국정원은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요청하는 것으로, 쿠팡은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12월 초에는 '이제 용의자에게 문자를 보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요청했다"고 구체적 경위를 설명했다.
다만 국정원이 직접적으로 포렌식 조사를 지시했는지 여부를 묻자 이 부사장은 "알아서 하라고 해 허용하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정리 과정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답해, 국정원이 '지시한 조사'인지 '쿠팡의 자체 조사'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논란을 키웠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의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쿠팡의 주장과 태도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배 부총리는 국회에서 "문제의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쿠팡이 민관 합동 조사단의 요청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부터라도 피조사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해 쿠팡의 조사 협조 태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로저스 대표는 노동 현안에 대한 질의에도 한발 물러서지 않았다. 2021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에 불복해 진행 중인 행정소송을 취하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사업장 내 사고에 대한 법적 요건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저희는 기업으로서 법적 절차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개인정보 유출과 산재 문제 모두에서 법적·제도적 공방을 이어가겠다는 신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서 '꼿꼿한' 태도를 유지하는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수 관계자들은 "한국을 무시한다"는 비판 섞인 반응과 함께, 미국 본사의 법적 리스크를 최우선에 둔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을 함께 내놓고 있다.
쿠팡의 모회사 쿠팡Inc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만큼, 한국 국회와 정부 기관 앞에서 책임을 광범위하게 인정할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조사를 비롯해 향후 징벌적 배상 소송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즉, 국내에서 책임을 확대 인정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미국에서의 사법 리스크가 훨씬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일부에선 쿠팡이 단기적인 국내 여론 악화는 감수하더라도 사태가 일정 부분 진정되면 고객 수와 매출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결국 국회 청문회에서의 강경 대응이 국내 정치·여론보다 글로벌 법적 환경을 우선시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국회와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경위, 조사 과정의 위법성 여부, 국정원과의 협조 범위 등을 놓고 추가 자료 제출과 재출석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개인정보 보호 제도 보완과 대형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고, 국회도 다음 회기에서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청문회 후속 대책 마련과 입법 보완 논의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