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5년간 6조엔 쏟아부을 것”…일본제철, 美·인도 중심 글로벌 철강 패권 확대 시동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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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일, 일본(Japan) 도쿄 본사에서 일본제철이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하며 2026회계연도부터 5년간 총 6조엔(약 57조원)을 국내외 설비와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USA)과 인도(India)를 축으로 한 공격적인 해외 확장을 예고하며, 글로벌 철강 시장 경쟁 구도에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일본 내 장기 수요 감소 속에서 해외 생산 확대를 통해 성장을 모색하는 전략이어서 주변국 철강업계에도 적잖은 파장을 주고 있다.

 

일본제철의 새 계획에 따르면 전체 6조엔 가운데 약 4조엔(약 38조원)을 미국과 인도 등 해외 사업에 투입해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 제시됐다. 나머지 2조엔(약 19조원)은 일본 국내 설비에 배분해 경쟁력 유지와 신규 수요 발굴에 활용할 계획이다. 회사는 현재 연간 약 8천만t 수준인 조강 생산 능력을 2030년대 중반 이후 1억t을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내놨다.

일본제철, 5년간 6조엔 투자…조강 생산능력 1억t 이상 확대 추진
일본제철, 5년간 6조엔 투자…조강 생산능력 1억t 이상 확대 추진

해외 전략의 핵심 축은 미국 시장이다. 일본제철은 최근 인수를 마무리한 미국 철강업체 US스틸에 대해 2028년까지 110억달러(약 16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기존 약속을 재확인했다. 특히 미국에서 수요 확대가 전망되는 고급 강재 분야를 겨냥해, 자사가 축적한 고급 강재 제조 기술을 US스틸에 제공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동차용 고장력 강판, 에너지 인프라용 특수 강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군이 주요 타깃으로 거론된다.

 

일본제철은 또 다른 성장 거점으로 인도를 지목했다. 인도 현지에 신규 제철소를 건설해 장기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하며, 인도 시장을 동남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수출 허브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인도 경제 성장과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라 철강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이 같은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 국내에서는 약 2조엔을 투입해 기존 제철소와 설비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자동차·건축·에너지 등에서 새로운 수요를 발굴해 수익 기반을 안정화하겠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노후 설비 효율을 개선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데 투자 비중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마이 다다시 일본제철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생산 규모와 수익 수준, 기술력, 해외 사업 전개 등을 감안했을 때 향후 전체적으로 선도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 주도권 확보 의지를 드러냈다. 대규모 투자와 함께 US스틸 인수를 지렛대로 활용해 세계 상위권 철강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계획은 일본 내 철강 수요 감소와 구조조정 흐름 속에서 나왔다. 일본제철은 2020년 이후 일본 내 고로 15기 가운데 5기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조강 생산 능력을 축소해 왔다. 그러나 새 중장기 계획에서는 국내 설비 추가 감축보다는 현 수준을 유지하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아사히신문은 새 경영계획이 일본 내 생산체제 재편 방향에 대해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내수 부진 속 구조개편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내 생산 능력 조정 여지는 남겨둔 채 해외 증설에 무게를 싣는 전략은 주요국 철강사가 직면한 공통 과제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과잉 생산과 글로벌 경기 둔화, 탈탄소 전환 압박 속에서 선진국 내 전통 설비를 유지하면서도 성장성이 높은 신흥시장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조치는 한국과 중국, 유럽(EU) 철강업계에도 경쟁 심화와 공급 과잉 우려를 안길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일본 언론은 US스틸 인수와 6조엔 투자 계획이 미국과 인도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린 파격 행보라고 보도하면서도, 일본 국내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환경 규제 강화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 과정에서 고로 중심의 기존 설비를 어떻게 전환할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향후 일본제철의 대규모 투자가 실제로 계획대로 집행될 경우, 글로벌 철강 공급망과 가격 구조에 상당한 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내 고급 강재 공급 확대와 인도 신규 제철소 가동 시점에 따라 각국 철강사의 설비 투자와 구조조정 계획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국제사회와 업계는 이번 중장기 계획이 어느 정도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일본 내 생산체제 재편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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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us스틸#인도제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