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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숨 쉬는 밤의 캔버스”…광화문에 켜진 빛, 일상의 시간을 물들이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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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겨울밤, 일부러 광화문을 찾아 야간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퇴근길에 스쳐 지나던 차와 건물의 불빛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도시의 밤을 천천히 바라보는 하나의 일상이 됐다. 차갑던 세종로 위로 거대한 빛의 결이 번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고 그 안에 자신의 하루를 겹쳐 본다.

 

광화문광장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미디어파사드다. 익숙한 건물 외벽이 거대한 스크린이 돼, 네 개의 작품이 차례로 도시의 밤을 채운다. 매 정시마다 시작되는 쇼를 기다리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빛의 파동을 따라간다. 누군가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서서 화면에 스며드는 색의 변화만 바라본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지만, 각자가 떠올리는 기억과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미디어파사드쇼부터 소원벽까지 ‘서울라이트 광화문 축제’ 서울 종로를 물들인다
미디어파사드쇼부터 소원벽까지 ‘서울라이트 광화문 축제’ 서울 종로를 물들인다

서울라이트 광화문은 2025년 12월 12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이어지는 빛 축제다. 광화, 빛으로 숨쉬다라는 이름처럼, 서울의 변화를 함께 지켜본 광화문 일대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으로 묶어낸다. 세종로 1-68 일대 광화문광장이 무대가 되고, 도로와 광장, 주변 건축물이 캔버스가 돼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만큼 이곳의 밤 풍경은 잠시 교통과 속도의 논리를 내려놓고, 머물러 감상하는 시간의 리듬으로 바뀐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수많은 발걸음과 사연, 그리고 쌓여 온 시간을 품고 움직인다. 미디어파사드는 그 보이지 않던 층위를 빛으로 꺼내어 보여준다. 영상과 음악, 건축 구조가 정교하게 맞물리며 건물은 더 이상 단단히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관람객들은 작품마다 달라지는 색과 리듬 속에서 서울을 떠올리고, 때로는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의 기억까지 함께 꺼내 보게 된다.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가진 역사적 기억도 이 축제를 특별하게 만든다. 한국 근대에 전기가 처음 켜지며 도시의 밤이 바뀌었던 자리, 그 첫 불빛의 놀라움과 설렘이 이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제 같은 장소에서 첨단 미디어아트가 펼쳐지며, 오래된 전등의 따스한 기억과 LED와 프로젝션이 만드는 선명한 빛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관람객은 눈앞의 화려한 장면을 따라가다가도 문득,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랜 시간 빛을 둘러싼 감정을 축적해 왔는지 떠올리게 된다.

 

광화문광장 곳곳에는 부대 프로그램이 공간을 채운다. 운수대통로라는 이름의 빛조형 작품은 광장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길이 된다. 바닥과 구조물에 번지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산책로이자 포토 스폿이자 작은 놀이 공간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사람들은 조형물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바닥에 비친 빛을 밟으며 뛰어다닌다. 세종 파빌리온에서는 또 다른 형식의 미디어아트가 펼쳐져, 실내외를 오가며 다른 농도와 질감의 빛을 경험할 수 있다.

 

참여형 프로그램은 이 축제를 단순한 관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전통 회화 일월오봉도를 모티프로 한 소원벽 앞에는 자연스럽게 줄이 생긴다. 사람들은 화면에 비치는 산과 해, 달 사이에 각자의 바람을 남기고, 그 문장들이 빛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지켜본다. 연말과 새해가 맞닿은 시기에 펼쳐지는 만큼,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는 마음들이 하나의 빛 무늬로 켜지는 셈이다. 누군가는 건강을, 누군가는 취업과 합격을, 또 누군가는 그저 무탈한 내일을 기도하며 조용히 화면을 바라본다.

 

서울의 숨쉬는 하루라는 프로그램은 도시의 하루 흐름을 영상과 빛으로 풀어낸다. 해가 뜨고 지는 리듬, 출근과 퇴근으로 분주한 시간,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불빛들 속에 관람객의 일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도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가 이곳에서 하나의 서사로 엮여 보인다. 관람을 마치고 광장을 떠나는 길에, 지금 이 시각에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해치캐릭터 및 작호도 AR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 관람객과 젊은 세대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현실 공간 위로 증강현실 속 해치와 작호도가 등장하면, 아이들은 화면 속 캐릭터를 쫓아 광장 이곳저곳을 누빈다. 어른들은 화면을 넘어 실제 배경에 자리한 광화문과 세종로를 다시 보게 되고, 역사적 상징물과 디지털 콘텐츠가 겹쳐지는 장면에서 새로운 감각을 느낀다. 옛 상징과 최신 기술이 만나는 이 체험은 도시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가깝게 좁혀 준다.

 

서울라이트 광화문은 서울특별시가 주관하는 공공 축제로, 지역 주민과 국내외 관광객이 뒤섞이는 도심 문화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교통 중심의 통로였던 광화문광장은 이 기간만큼은 머물고 쉬고 감상하는 미디어아트 무대로 변신한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잠시 발길을 멈추고, 여행객들은 짧은 일정 속에서도 일부러 이 시간대를 맞춰 찾아온다. 댓글과 후기에는 데이트 코스, 가족 나들이, 연말 약속 장소로 이곳을 추천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쌓인다.

 

도시의 빛을 향유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엔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야경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거리 위에서 빛과 함께 호흡하는 경험이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사진 몇 장으로 기억을 남기되, 그보다 더 길게 머무르며 빛과 소리,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려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공 미디어아트의 의미처럼, 도심 속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광장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

 

2025년 12월 12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 기간 동안, 광화문 일대의 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오래전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밤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과,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AR 캐릭터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풍경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은 시간의 폭을 실감하게 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처럼 보이는 도심 산책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도시와 나의 하루를 새로운 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 이 변화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고 싶은,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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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이트광화문#광화문광장#미디어파사드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