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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고요, 겨울 바다의 숨” …전북 겨울 여행이 달라졌다 → 역사와 미식 찾는 사람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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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겨울에 전북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눈 내리는 산과 온천을 먼저 떠올렸지만, 지금은 고즈넉한 한옥과 바닷가 절벽, 근대 골목의 기억을 따라 걷는 여행이 일상이 됐다. 차가운 계절에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풍경들이다.

 

전북의 겨울 여행은 소란스러운 축제 대신, 속도를 늦춘 산책에서 시작된다. 남원시 천거동의 광한루원에 들어서면 먼저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스민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알려진 이 조선시대 정원은 겨울이면 색을 덜어낸 대신, 소리도 함께 줄인다. 얼어붙은 연못 위로 정자가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누각 사이로 스며드는 찬 공기 속에 선비들의 느긋한 풍류가 겹쳐진다. 방문객들은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사진보다 걷는 시간이 더 좋았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조용한 풍경이 마음의 속도를 낮춰 준다.

출처=한국관광공사 채석강
출처=한국관광공사 채석강

도심 속 겨울 정취를 찾는 이들은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의 전주 한옥마을로 향한다. 수백 채 한옥 지붕 위에 얇게 내려앉은 서리가 골목마다 다른 색을 더한다. 상점과 공방이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공예품을 고르는 손길이 한결 느려진다. 예전처럼 빠르게 둘러보고 떠나는 코스가 아니라,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한옥 마당을 오래 바라보는 여행으로 바뀌었다. 겨울에는 관광객 발길이 상대적으로 줄어 골목이 한층 조용해지면서, 한옥 특유의 고요와 상점가의 활력이 묘하게 공존한다. 방문객들은 따뜻한 국물요리와 길거리 간식을 맛보며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삶도 잠시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고백한다.

 

겨울 바다를 찾는 이들의 발길은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의 채석강으로 이어진다. 파도가 쌓아 올린 겹겹의 절벽은 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칼날처럼 선선한 겨울 바람이 불어올 때 풍경은 더 선명해진다. 마치 책장을 포개 놓은 듯 쌓인 퇴적암층은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입체감을 드러낸다.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해식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젖은 바위의 차가운 촉감, 동굴 안으로 들이치는 파도 소리에 “생각이 한 번에 비워졌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탁 트인 수평선과 거친 파도가 만드는 소리는 도시 생활에서 눌러 둔 감정을 털어 내는 배경음이 된다.

 

이런 변화는 여행 목적에서도 드러난다. 예전처럼 연말 쇼핑과 실내 놀이시설만을 찾기보다,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경험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걷기 좋은 정원과 한옥 골목, 해안 절벽을 묶어 하루 동선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한 지역 안에서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감각을 맛보려는 선택이다. 전통문화와 자연 풍경이 함께 있는 전북은 이런 취향을 채우기에 제격이다.

 

날씨가 더 차가워지는 오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실내로 자리를 옮긴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2가의 전주난장은 그런 겨울 오후를 책임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옛 골목길을 재현한 실내에는 한때 당연했던 풍경들이 다시 살아난다. 간판부터 조명까지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난 거리, 노래방과 오락실, 고고장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세대를 막론하고 발길을 붙잡는다. “부모님과 함께 와서, 말보다 추억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체험담도 나온다. 그만큼 근대사 감성이 세대 간 대화를 여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겨울 여행 흐름을 “속도 조절을 위한 선택”이라고 읽는다. 빠르게 소비하는 관광보다, 한 번 머물 때마다 역사와 추억, 풍경을 함께 담는 방식으로 여행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누군가는 한옥마을에서 전통 한식을 맛보고, 누군가는 광한루원에서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이는 채석강 절벽 앞에서 자신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여행지가 기록의 배경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겨울이라서 더 사람향이 났다”, “춥지만 마음은 따뜻했다”는 말들이 이어진다. 한옥마을에서 먹은 한 끼, 채석강 앞에서 마신 따뜻한 커피, 전주난장에서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이 각자의 겨울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누군가에게 전북 겨울 여행은 가족과의 추억을 쌓는 시간이고, 다른 이에게는 혼자 걸으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여정이다.

 

전북의 겨울 풍경은 요란하지 않지만,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고요한 정원과 한옥 지붕, 해안 절벽과 근대 골목이 이어지는 하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계절을 통과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처럼 보이는 겨울 여행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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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겨울여행#전주한옥마을#채석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