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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실 책임제로 금융사 보상 책임 강화”…당정, 보이스피싱 근절 입법 속도전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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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급증을 둘러싼 금융 책임 공방과 제도 보완 요구가 정면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금융회사의 무과실 책임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면서 금융권과 소비자 간 이해관계 재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 당정 회의를 열고, 보이스피싱 예방과 처벌,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핵심은 개인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한도에서 금융회사가 피해액을 보상하는 무과실 책임제 도입이다.  

민주당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 단장인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회의에서 “내년이 보이스피싱 근절의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 정책위의장은 피해 예방과 사후 구제를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정비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 측 보이스피싱 범정부 태스크포스 단장인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이번 당정 TF 협의 결과를 토대로 관련법의 하위 법령을 신속히 정비하고 8·28 대책도 빈틈없이 보완해 신종 사기 수법에도 더욱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윤 실장은 기존 대책의 보완과 함께 신종 범죄 수법에 대응하는 규제 정비에 방점을 찍었다.  

 

당정은 현재 여러 관련 법안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주요 내용에는 금융회사의 일정 한도 내 보이스피싱 피해액 보상, 보이스피싱 의심 정보 공유, 대포폰에 대한 이동통신사 관리 책임 부과, 불법스팸 발송 관련자 과징금 부과, 가상자산 피해 지급정지 및 환급 조치,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국내 제조·유통 금지 등이 포함됐다.  

 

특히 당정은 개인이 아무리 주의해도 정교해진 범죄 수법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일정 한도 범위에서 금융회사가 피해액을 보상하는 무과실 책임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권에 보다 강한 경각심을 부여해 선제적 모니터링과 내부 통제를 강화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거래소에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를 부과해 피해금 환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 세탁과 추적 회피 수법이 늘어나는 만큼, 거래소의 신고·차단 의무를 강화해 피해 회복 통로를 넓히겠다는 방향이다.  

 

관련 입법 작업도 시작됐다. 민주당 강준현 의원과 조인철 의원은 지난 23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발의해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급 절차와 책임 범위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당은 추가 논의를 통해 당정 협의 내용을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통계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당정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보이스피싱 총 발생 건수는 2만1천588건, 피해액은 1조 1천33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는 15.6퍼센트, 피해액은 56.1퍼센트 늘어났다.  

 

다만 정부가 8월 28일 보이스피싱 대응 대책을 발표한 이후 지표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매달 전년도 수치를 웃돌던 피해 통계가 10월과 11월에는 모두 약 30퍼센트가량 감소했다는 것이 당정 설명이다. 당정은 이를 근거로 추가 입법과 제도 정비가 병행될 경우 피해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권에선 금융회사와 통신사, 가상자산거래소에 부과되는 새로운 책임 범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용 부담과 과실 범위, 보상 한도에 대한 논쟁이 예상되는 만큼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관련 법안들을 상임위에 회부해 본격 심사에 착수할 예정이며, 정부도 하위 법령 정비와 8·28 대책 보완 작업을 병행해 제도 시행 시점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은 보이스피싱 근절과 피해자 구제를 둘러싼 책임 논의를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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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보이스피싱무과실책임제#윤창렬국무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