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수술 1만례·5년 생존율 76점8퍼센트…분당서울대, 최소침습 표준 바꾼다
폐암 수술 기술과 다학제 치료 전략이 결합하면서 폐암 치료 패러다임이 정밀의료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축적한 대규모 수술 데이터와 최소침습수술 노하우는 생존율 향상뿐 아니라 폐기능 보존과 삶의 질 개선 측면에서 산업적·의료적 파급력이 주목된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성과를 고위험 암 수술 분야에서 정밀 수술기법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폐암 수술 누적 1만례를 달성했다고 11일 밝혔다. 2003년 개원 당시 첫 폐암 수술을 시행한 이후 2020년 누적 5000례를 넘겼고, 3년여 만인 올해 11월 수술 1만례를 돌파했다. 2020년 이후 매년 평균 900례 이상의 폐암 수술을 집도하면서 국내 상급종합병원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폐암 수술 규모를 형성했다.

폐암은 국내를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암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국내 전체 암의 5년 생존율이 72점1퍼센트 수준인 데 비해 폐암의 5년 생존율은 40점6퍼센트로 크게 낮다. 초기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진단 시점에 이미 3기 이상인 경우가 많고, 재발과 전이가 잦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병원 측은 대량 수술 경험과 정교한 수술기법이 생존율 격차를 줄이는 핵심 변수라고 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폐암센터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부터 흉강경 수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최소침습수술 체계를 구축했다. 흉강경 수술은 갈비뼈 사이에 1센티미터 안팎의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내고 내시경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삽입해 시행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넓게 절개하는 개흉술과 대비되는 최소침습수술이다. 센터는 2008년 초기 폐암을 대상으로 개흉술과 흉강경 수술을 비교한 연구에서 생존율, 흉관 유지 기간, 수술 후 재원일수 등 주요 지표에서 흉강경 수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우수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이후 의료진의 술기 향상과 임상 연구가 병행되면서 최소침습수술 비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폐암센터의 폐암 수술 중 98점9퍼센트가 흉강경과 로봇수술 같은 최소침습 방식으로 진행된다. 흉부외과 김관민 교수는 폐암뿐 아니라 식도암, 흉선암 등 흉부 수술만 1만례 이상 집도한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폐암 분야에서 흉강경 수술 적용 비율을 크게 끌어올려 장기 생존율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 성적은 국제 비교에서도 상위권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폐암센터에서 수술받은 1기부터 3기까지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6점8퍼센트에 이른다. 특히 예후가 상대적으로 나쁜 3기 폐암 가운데 3A 병기의 5년 생존율은 64점8퍼센트로 보고돼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난도 수술과 보조항암요법, 방사선 치료를 결합한 다학제 전략의 효과가 수치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센터는 단순 생존율을 넘어 수술 후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술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가 구역 절제술 도입이다. 과거에는 폐를 다섯 개 엽 단위로 절제하는 폐엽 절제술이 표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종양의 정확한 위치와 주변 림프절 전이 여부를 영상과 병리 결과를 통해 정밀 분석한 뒤, 폐를 20개 구역 단위로 나눠 필요한 구역만 절제하는 구역 절제술을 적용하고 있다. 절제 범위를 최소화해 남는 폐조직을 최대한 보존함으로써 수술 후 폐기능 저하와 호흡곤란 위험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조석기 폐암센터장은 구역 절제술보다 더 적은 범위를 잘라내는 쐐기 절제술에 대한 안전성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쐐기 절제술은 종양 주변을 쐐기 모양으로 최소한만 제거하는 방식으로, 저위험 소형 폐암 환자에서 폐기능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 센터장은 폐기능 보존과 재발 위험 관리 사이에서 최적 균형점을 찾기 위한 임상근거를 축적해 새로운 수술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폐암 수술 성과에는 수술기법뿐 아니라 기관 내부의 다학제 협진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폐암센터와 함께 호흡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이 진단 단계부터 치료 전략 수립, 수술 전후 관리까지 긴밀하게 협업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진행성 폐암 환자의 경우 항암·방사선 치료를 수술 전후에 병행해 종양 크기를 줄이거나 재발 위험을 낮추는 전략을 적용하고, 광역학치료, 고온항암관류요법, 냉동치료 등 특수치료 옵션을 통해 치료 선택지를 넓혔다.
정진행 병리과 교수팀의 연구는 폐암 병기와 치료 전략의 국제 기준에도 변화를 유도했다. 정 교수팀은 폐암세포의 공간 내 전파를 의미하는 STAS 개념을 도입해 병리 진단에 적용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전향적 데이터를 장기간 축적해왔다. 연구 결과 STAS가 양성인 경우 병기상 폐암 1기여도 재발률이 매우 높고 5년 생존율이 낮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정 교수팀은 T병기 평가 시 STAS가 양성이면 병기를 한 단계 높여 평가하고, 보조항암요법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제 학계에 제시했다.
이 데이터는 일본과 미국 등 다수 해외 기관의 대규모 검증 연구에서도 재현됐고, 최종적으로 세계폐암학회 병기위원회에서 폐암 T병기에 STAS 개념을 반영하라는 권고안으로 이어졌다. 병리학적 미세 특성을 실제 병기 체계에 편입시킨 사례로, 향후 전 세계 폐암 환자의 치료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밀 병리 기반의 위험도 분류가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영상과 수술, 약물치료를 통합한 정밀의료 모델도 더욱 세분화될 전망이다.
김관민 교수는 폐암 수술 1만례 달성이 단일 센터의 수술 물량 확대를 넘어, 축적된 임상 데이터와 다학제 협진 모델이 결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한 연구와 환우회를 통한 정서적 지원, 수술 전후 재활 관리 등 비의료적 영역까지 아우르는 노력이 장기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수술·항암·방사선 치료를 유지하는 동시에, 환자 경험과 정서적 안정을 중시하는 폐암 치료 모델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의 경험이 향후 폐암 수술 표준과 보험제도, 의료질 평가 기준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최소침습수술 확대와 구역·쐐기 절제술 같은 기능 보존 수술의 근거가 축적될수록, 수술 수가 체계와 평가 지표가 생존율뿐 아니라 폐기능과 삶의 질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고난도 암 수술에서 정밀 수술기법과 정밀 병리 진단을 결합한 모델이 실제 진료현장과 정책에 얼마나 빠르게 녹아들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