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메모리 일본서 증산”…마이크론, 히로시마 대규모 투자로 미중 디커플링 가속
현지시각 기준 30일, 일본(Japan) 히로시마현에서 미국(USA)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 계획이 밝혀졌다. 인공지능(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에 대응하는 이번 조치는 미중 전략 경쟁과 대만 해협 리스크 속에서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일본 혼슈 서부 히로시마현 기존 공장 부지에 새로운 제조 건물을 신설한다. 착공은 2026년 5월로 예정돼 있으며, 2028년경부터 차세대 HBM 양산과 출하를 시작하는 일정이 제시됐다. 마이크론은 이번 프로젝트에 약 1조5천억엔, 우리 돈으로 약 14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히로시마 신규 시설에서 생산될 제품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초고속 전송에 특화된 차세대 HBM이다. AI 서버, 초대형 데이터센터 등에서 핵심 부품으로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생성형 AI 수요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품군이다. 닛케이는 이 공장이 2019년 이후 히로시마 공장에 들어서는 첫 신규 제조 시설로, 세계적인 차세대 HBM 생산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투자 재원의 상당 부분은 일본 정부 재정 지원이 뒷받침한다. 마이크론이 투입하는 1조5천억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최대 5천억엔, 약 4조7천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도쿄 정부는 2030회계연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 10조엔 이상을 투입해 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에 구축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지원을 산업정책과 안보전략이 결합된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그동안 첨단 HBM 생산을 주로 대만에서 진행해 왔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 심화, 대만 유사시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부각되면서 생산 거점 다변화 필요성이 커졌다. 히로시마 증설은 일본 내 생산 비중을 확대해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조치는 동북아 반도체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5월 히로시마 공장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처음 도입하며 초미세 공정 역량을 강화했다. 이번 신규 건설을 통해 EUV 기반 생산라인을 확충하고 차세대 HBM 대량 생산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닛케이는 마이크론이 기술력에서 앞서 있는 한국(SK하이닉스)을 정면으로 추격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내에서는 공급 안정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닛케이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AI 반도체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히로시마 생산 확대가 일본 기업들의 주요 부품 조달 여건을 개선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생산이 본격화될 경우 공급 제약 완화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가격 하락 압력도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투자와 지원은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부흥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의 기술 동맹을 강화하며 반도체, 배터리, AI 등 전략 산업에서 자국 내 생산 능력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마이크론 지원은 이미 발표된 국내외 기업 유치 정책과 더불어, 첨단 메모리 분야에서도 일본을 핵심 생산 허브로 만들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공급망 탈중국, 탈대만 흐름이 가속하는 징후로도 인식된다.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반도체 블록 속에서 일본이 메모리 분야 핵심 거점으로 부상할 경우, 한국, 대만, 중국 간 경쟁 구도에도 구조적 변화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AI 확산이 이어지는 한 HBM을 둘러싼 설비 투자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지속될 것이라며, 이번 히로시마 투자가 동북아 반도체 지형 재편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마이크론과 일본 정부의 계획이 예정된 시점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행될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