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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 문학으로 본 의료현장…보령, 의사 수필상 21년째 잇는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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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의 생명 존중 가치가 의사의 글쓰기를 통해 다시 조명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인공지능 진단, 정밀의료 등 기술이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운데, 환자와 의사의 서사는 여전히 치료와 돌봄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의사들의 수필은 자살 예방, 외상 후 스트레스, 의료진 소진과 같은 정신건강 이슈를 드러내고, 의료 AI와 원격의료가 대체하기 어려운 공감과 관계의 영역을 재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보령은 2일 보령 본사 중보홀에서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진환 원장의 자살과 빈 의자, 그리고 가디건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행사는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공모를 바탕으로 한국수필문학진흥회의 심사를 거쳐 총 9편의 수상작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대상 수상작은 우울증으로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따라가며, 자살 충동과 회복 사이에 놓인 미세한 정서 변화를 포착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환자의 내면 붕괴와 회복의 궤적을 임상 장면과 교차해 묘사하면서, 약물 처방과 진단을 넘어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의 본질적 역할을 드러냈다. 심사 과정에서 의술이 생명을 지탱하는 정서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섬세하게 서술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자살 예방 정책, 정신건강 데이터 기반 치료, 디지털 치료제 논의에서 반복해서 제기되는 인간적 접점의 중요성을 문학적 언어로 재구성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진료과 의사들이 참여해 현장의 복합적 단면을 드러낸 점도 눈에 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의 구조와 사투를 그린 고요와 아수라의 경계에서가 금상에 올랐다. 위기 대응 체계, 응급의료 시스템, 재난 상황에서의 의료 공공성 문제가 현장 의료진의 시선으로 압축된 셈이다. 은상에는 의료인의 역할과 마음가짐을 돌아본 꽃을 든 남자와 나를 왜 살려냈나요가 선정돼, 생명 연장의 기술이 환자의 삶의 질, 자기결정권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동상 수상작들은 구원의 손길, 침묵하는 활시위의 염원, 겨울의 끝에서, 구원의 실마리, 아침의 가족 등 제목에서부터 회복과 연대, 가족, 기다림의 정서를 공유한다. 이들 작품은 대형 병원부터 산부인과, 검사 전문기관까지 각기 다른 현장에서 마주치는 환자의 서사를 수필 형식으로 풀어내, 진단 장비와 데이터로는 포착되지 않는 의료의 정성적 요소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서사가 향후 환자 경험 데이터를 해석하고, 인간 중심의 의료 인공지능 설계에 참고할 수 있는 질적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2005년 제정 이후 21년간 17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의사의 문학적 기록을 통해 의료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생명 존중과 사랑이라는 의료의 기본 가치를 사회와 공유해 왔다. 디지털 차트, 의료 빅데이터, AI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환자의 목소리와 의료진의 내적 경험을 남기는 플랫폼이자, 의료윤리와 인술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장으로 기능해온 셈이다.  

 

해외에서는 의사 서사와 환자 서사를 연구하는 내러티브 메디슨이 정밀의료, 데이터 기반 진료와 함께 환자 중심 의료 구현의 한 축으로 다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의사 수필과 환자 이야기를 구조화해 교육 콘텐츠, 공공 캠페인, 의료 AI 학습용 보조 데이터 등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보령의 장기적인 수필 공모와 아카이빙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한국형 의료 내러티브 자산을 축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첨단 의료기술과 함께 환자의 서사를 다루는 역량이 의사 교육, 병원 서비스, 디지털 헬스케어 설계에서 점점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본다. 산업계는 이번 수상작들이 보여준 생명 존중의 시선이 앞으로도 기술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의료 혁신 논의에 균형을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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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환#보령의사수필문학상#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