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손실 아닌 지방 중심 감량”…위고비, MRI로 비만약 논란 반전
비만 치료제 시장을 흔들어온 ‘근육 감소’ 우려에 대해 노보노디스크가 정밀 MRI 기반 체성분 데이터를 들고 반박에 나섰다. GLP-1 계열 주사제 위고비 고용량 임상에서 체중 감소의 대부분이 지방에서 비롯됐다는 결과가 제시되면서, 체중 수치만을 기준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논쟁해온 비만 치료 패러다임이 ‘체성분 중심 평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이번 분석을 GLP-1 비만약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달 26일 미국 식품의약국에 위고비 7.2밀리그램 고용량 추가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비당뇨병 성인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스텝업 연구 하위 분석 결과를 함께 제출했다. 비만약 사용 시 체중은 줄지만 근육도 같이 줄어 노쇠와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실제 체중 감소 구성 성분을 자기공명영상 기반으로 정밀 분석한 것이다.

스텝업 연구는 체질량지수 30 이상 비당뇨병 성인 비만 환자 1407명을 대상으로 위고비 7.2밀리그램, 2.4밀리그램, 위약을 72주간 투여한 임상이다. 그 결과 7.2밀리그램 투여군의 평균 체중 감소율은 20.7퍼센트, 2.4밀리그램 투여군은 17.5퍼센트였고, 위약군은 2.4퍼센트 감소에 그쳤다. 특히 고용량에서는 체중의 25퍼센트 이상을 감량한 환자 비율이 더 높아지며 용량 의존적 효과가 확인됐다.
핵심은 체중이 어떤 성분에서 빠졌는지를 본 체성분 분석이다. 위고비 투여군 49명과 위약군 6명을 대상으로 전신 MRI 촬영을 통해 지방조직과 제지방 조직을 구분하고, 72주간의 변화를 정량화했다. 그 결과 위고비 투여군에서 체중 감소분의 84.5퍼센트가 지방조직 감소에서 비롯됐고, 지방을 제외한 제지방 감소 몫은 15.5퍼센트에 그쳤다.
제지방은 근육, 뼈, 장기, 체수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체성분 분석에서 지방과 구분되는 나머지 체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체중 감량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제지방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제지방 손실 비중이 높을수록 근육량과 기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이번 분석에서는 제지방 감소가 상대적으로 작았을 뿐 아니라, 근육 내 지방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고 해석되고 있다.
MRI 정밀 분석에서 근육 내부에 스며든 지방을 뜻하는 근내 지방 침윤도는 9.8퍼센트 감소했다. 회사 측은 이 수치를 근육 조직량 자체의 손실이 아니라, 근육 안에 축적된 지방이 줄어든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근육량과 근기능을 평가하는 30초 의자 일어서기 테스트 등 기능 지표에서는 위고비 투여군과 위약군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체중은 크게 줄었지만, 일상 동작 수행 능력은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지방조직 감소 폭은 더욱 뚜렷했다. 전신 총 지방조직량은 위고비 투여군에서 25.1퍼센트 감소한 반면, 위약군에서는 0.9퍼센트만 줄었다. 대사질환과 밀접한 내장지방의 경우 위고비 군이 31.1퍼센트 감소했고 위약군이 6.3퍼센트 감소해 양 군 간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지방 대비 제지방 비율도 위고비 투여군에서 1.8에서 1.35로 개선돼, 같은 체중을 유지하더라도 더 ‘지방이 적은 몸’으로 재구성된 셈이다. 위약군은 1.93에서 1.85로 변동폭이 미미했다.
이번 결과는 최근 규제기관이 비만약 평가 기준에 체성분 지표를 포함시키려는 움직임과 맞물리며 의미가 커지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FDA가 올해 1월 비만·체중관리 약물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체중 감소의 주성분이 제지방이 아닌 지방 감소로 나타나는지를 평가할 것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량 위고비 임상의 하위 분석이 제지방량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지방 중심 감량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향후 규제 심사와 임상 설계에 참고 기준이 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는 GLP-1 계열 약물을 둘러싼 경쟁이 이미 격화됐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엘리릴리의 마운자로 등이 대표적이다. 두 약물 모두 체중의 15퍼센트 이상 감량을 목표로 하는 고효능 약제로 자리잡았지만, 체중 감소 속도와 폭이 큰 만큼 근감소증과 노쇠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과 유럽 내 학계에서도 최근에는 단순 체중 수치 대신 근육량, 골밀도, 기능 지표를 포함한 체성분 기반 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노령 인구와 비만 동반 질환 증가를 고려해, 비만약 사용 시 근육 감소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프로토콜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에서도 스포츠의학, 노인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비만 치료 시 저항운동, 단백질 섭취 관리와 GLP-1 병용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위고비 고용량의 MRI 데이터는 지방과 제지방의 변화를 구분해 제시함으로써, 규제기관과 임상의에게 참고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고용량 위고비는 현재 유럽 의약품청에서도 심사가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유럽 승인 시점을 내년 1분기 전후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추가 적응증 또는 용량 확대 허가를 받을 경우, 글로벌 비만 치료 시장에서 위고비의 포지셔닝은 단순 ‘체중 감소제’에서 ‘대사 건강 개선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장지방과 근내 지방 감소가 인슐린 저항성, 지방간, 심혈관 위험도 등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후속 연구에 따라 시장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MRI 하위 분석 결과를 전체 환자군에 그대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체성분 분석에 참여한 인원이 50여 명에 그쳐 인종, 연령, 기저질환 등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 복용 시 근육량과 기능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의료계에서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데이터 공개로 비만 치료제 개발·평가에서 ‘얼마나 많이 빼느냐’보다 ‘어떤 조직을 빼느냐’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을 조짐이 뚜렷해졌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식단·운동 코칭과 GLP-1 비만약을 결합해 지방 중심 감량을 유도하려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의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비만 치료제 경쟁이 체중 감소율뿐 아니라 지방·제지방 비율, 근기능 유지, 대사 지표 개선 등 복합 지표를 놓고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위고비 고용량의 체성분 데이터가 규제와 임상 현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신뢰를 얻을지, 그리고 실제 처방 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