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판결문 열람 확대” 형사소송법 통과…민주당, 은행법 상정에 국민의힘 또 필리버스터
사법 개혁 법안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치가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데 이어 은행법 개정안까지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다시 필리버스터로 맞서며 연말 정국이 입법 격돌 속에 빠져들었다.
국회는 12일 본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전날 오후 2시 34분 시작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시작 24시간이 지나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 요건을 충족하면서 표결로 종결됐다. 종결 표결에는 181명이 찬성해 필리버스터 종료 요건을 넘겼다.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곧바로 표결에 부쳐진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6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회 의사과에 따르면 이날 의결은 2025년 12월 12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개정안은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의 판결문까지 열람과 복사가 가능하도록 공개 범위를 넓힌 점이 핵심이다. 다만 별도의 열람·복사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한정해 대법원 규칙에 따라 판결문에 기재된 문자열과 숫자열이 검색어로 기능하도록 했다. 이 조항이 시행되면 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공개 대상 판결문에 대해 단어, 숫자 등을 입력해 하급심 판결문까지 검색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중심으로 판결문 공개가 이뤄지고 있으며, 하급심 판결문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허용되고 있다. 국회는 사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개 범위를 넓히되 개인정보 보호와 재판 당사자 권익 침해 우려를 줄이기 위한 보완 장치로 검색과 열람 절차를 대법원 규칙에 위임했다.
법원의 준비 기간을 고려해 법 공포 뒤 2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개정안을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도 부칙에 담겼다. 사법부가 판결문 비식별화, 전산 시스템 정비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반영된 셈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직후 국회는 은행 가산금리 규제를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가산금리 산정 과정에서 보험료와 각종 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핵심이며, 내년 금융·보험업을 대상으로 한 교육세 인상분 역시 가산금리에 전가하지 못하게 막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소관이지만 두 상임위원회 위원장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법안 심사가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지난 4월 해당 개정안을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고 본회의 상정을 추진해 왔다.
법안 제안자인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본회의 제안 설명에서 "은행은 물적 담보 대출이나 신용대출인 경우에도 각종 비용을 가산 금리에 포함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금융 소비자가 더는 봉이 되지 않도록 국회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가산금리 구조를 손질해 이자 부담을 낮추고,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즉각 필리버스터에 착수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첫 토론에 나선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효과는 미지수', '대출 문턱을 높인다'는 부정적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된 토론과 심사도 없이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임 있는 모습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시장금리 왜곡과 중소·저신용 차주들의 대출 접근성 악화를 우려하면서 충분한 영향 분석과 금융당국·업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개혁 법안과 경제 관련 쟁점 법안에 대한 연내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해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무제한 토론을 통해 법안 처리 속도를 늦추고, 국민 여론전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 24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종결 표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 지도부는 형사소송법에 이어 은행법, 경찰관직무집행법,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주요 법안을 연말까지 순차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어 여야 충돌은 한층 더 격화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12일 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만큼, 24시간이 경과하는 13일 오후 종결 표결을 시도해 곧바로 표결 처리에 나설 계획이다. 이어 같은 날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다시 필리버스터와 종결 표결 절차를 반복하겠다는 구상이다.
11일 임시국회 본회의 개의와 함께 시작된 필리버스터 대치는 14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14일까지 매일 1건씩 주요 법안을 처리하는 이른바 살라미식 입법 전략을 유지하면서, 이후 21일부터 24일까지 다시 본회의를 열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등 사법 개혁 관련 법안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주요 법안마다 무제한 토론과 종결 표결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회 정상화와 민생 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예산안과 비쟁점 법안 처리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은 형사소송법과 은행법 처리 방식을 두고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으며, 양당 모두 강경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국회는 사법 개혁 법안과 경제·치안 관련 쟁점 법안을 둘러싼 필리버스터 공방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여, 연말까지 거친 입법 대결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